초등학생 시절 필자는 테니스 교습을 받은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데 익숙해서 인지 포핸드는 나름 쉽게 배웠지만, 백핸드가 어려웠다. 그래서 백핸드 쪽으로 날아오는 공도 미리 더 움직여 포핸드로 치곤 했다. 하지만 모든 공을 그렇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백핸드 쪽으로 공이 날아오면 필자는 긴장했고 겁이 났다. 코치가 가르쳐준 대로 힘껏 라켓을 휘두르지만, 공을 정확히 맞히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 셀프1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난을 시작했다. “세상에 저런 어이없는 샷을 치다니” “할머니도 너보단 잘 치겠다, 바보야” 셀프1의 평가에 자신감은 더 없어졌다. 자기방해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2개의 자아가 있다. 스포츠 심리학계의 기념비적인 책 『테니스의 이너 게임』을 저술한 티모시 골웨이는 이를 ‘셀프1’, 셀프2’라 칭했다. 코치가 알려준 대로 일일이 지시하고 평가하는 쪽이 셀프1이다. 실제로 동작을 하는 쪽은 셀프2다. 의식적인 마음이자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셀프1이 조용히 있고, 무의식적인 마음이자 천부적인 잠재역량을 가진 셀프2가 집중할 때 우리는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셀프1을 잠재우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금 여러분이 칼럼 읽는 것을 중단하고, 아무 생각없이 1분을 버틸 수 있는지 실험해보자. 분명 생각 안 하려고 할수록 무엇인가 더 많이 생각날 것이다. 사람의 두뇌가 그렇다. 어떤 생각을 의식적으로 억제하려고 할수록 우리는 더 그 생각에 집착하게 된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 "초콜릿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 초콜릿을 오히려 더 많이 먹는 결과가 나오는 식이다.
따라서 셀프1에게 “조용히 해”라고 말하면, 그는 더 큰 소리로 떠든다. 셀프1을 잠재우기 위해 골웨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멈추라고 한다. 예를 들어 서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좋다” 혹은 “나쁘다”란 판단이나 교정의 생각 없이 자신의 서브를 관찰해보자. 이를 통해 “서브에 힘이 없네” 혹은 “스핀이 부족하구나” 등의 객관적인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변화를 만드는 첫 단계는 있는 현상을 그대로 비평가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평가하려는 의도가 없었기에 셀프1의 개입은 줄어들고, 비평가적 관찰 상태에서 하는 서브는 전보다 기술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가 당신의 샷에 어떠한 코멘트라도 하면 비평가적 인지 상태는 깨진다. 테니스 경기를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날따라 상대방 A가 유난히 잘 친다는 생각이 들면, 골웨이가 알려준 트릭을 써보자. 코트를 바꿀 때 A에게 “오늘 포핸드가 유독 좋은 이유가 있어?”라고 슬쩍 물어보는 것이다. 미끼에 걸린 A는 자신의 포핸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오늘 어떻게 몸의 앞쪽에서 공을 치는지 등 몇 가지를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A의 위력적인 포핸드는 사라진다. 당신에게 좀 전에 말한 대로 플레이하려고 의식하는 순간, A는 좋았던 타이밍과 유연성을 잃는다. 무엇인가를 컨트롤 하려고 할수록 최고 플레이는 결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단계는 원하는 결과를 상상하는 것이다. 동작을 시각화하는 것이 셀프2의 자연스러운 학습능력을 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내 서브에 파워가 들어가는 장면을 상상하자. 이를 위해 강력한 서브를 구사하는 선수의 장면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나친 분석이나 생각을 하지 말고 본 것을 흡수하고 느껴야 한다.
많은 운동선수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마음속으로만 근육 운동을 했는데도 실제 근육이 강화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회전과 점프 등을 머릿속에 반복적으로만 그려봐도 기술이 향상된다. 따라서 자신이 파워 서브를 성공리에 마치는 모습을 반복해서 상상하면 뇌는 그것을 상상이 아닌 실제 일어난 성공 경험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쌓이면 실전에서도 할 수 있다.
마이클 펠프스는 올림픽 개인 종목에서만 금메달 13개를 획득했다. 계주까지 합쳐 그가 차지한 올림픽 금메달 수는 무려 23개다. [AP=연합뉴스]
2008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위대한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미국)는 200m 접영 경기 중 뜻밖의 고비를 만난다. 레이스 시작과 동시에 그가 쓰고 있는 고글이 새기 시작하더니, 100m 지점에 이를 때는 물이 가득 차서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펠프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 중 벌어질 모든 상황에 대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따라서 앞을 볼 수 없을 경우에 대한 구체적 해결책도 그는 갖고 있었다. 고글에 물이 새기 시작하자 펠프스는 침착하게 자신의 스트로크 수를 세기 시작했다. 그는 레이스를 효과적으로 빨리 끝내려면 몇번의 스트로크가 필요한지 이미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파악했다. 펠프스는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한다.
마지막 단계는 상상할 수 없는 보고가 숨겨져 있는 셀프2를 신뢰하고 “일어나게 놔두는 것(let it happen)”이다. 셀프1과 셀프2의 관계는 부모와 어린 자녀 사이와 비슷하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걷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학습 과정을 통해 잘 걷게 된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셀프2에는 이미 훌륭한 자동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힘겹게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을 가르치고 고치는 주입식 교육방법 대신에, 체험으로 배울 수 있는 자연적 학습 프로세스가 갖추어질 때 우리는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위대한 시는 침묵에서 태어나고, 아이디어가 흐르게 놔둘 때 예술가는 최고의 작품을 만든다. 스포츠에서의 멋진 순간도 선수가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서 직감에 의해 플레이할 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