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3세 중 가장 먼저 경영 체제가 안정된 곳이 바로 현대백화점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2007년 35세 젊은 나이에 지휘봉을 잡았고, 동생 정교선 부회장과 함께 ‘형제 경영’를 구축하며 내실을 다지고 있다. 최근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신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10년 간 2조4000억 투입, 공격적 M&A로 영역 확장
3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은 홈리빙·인테리어 사업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정지선 회장은 글로벌 온라인가구·매트리스 기업인 지누스 인수로 역대 그룹의 최대 규모의 M&A를 성사시켰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2일 지누스 창업주 이윤재 회장 등이 보유한 지분 30%(경영권 포함)를 7747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지분 인수와는 별도로 지누스와 인도네시아 제3공장 설립 및 재무구조 강화를 위해 1200억 원 규모의 신주 인수 계약도 체결했다. ‘아마존 매트리스’라 불리는 지누스에 사실상 9000억 원에 가까운 투자를 한 셈이다. 국내 최대 리빙·인테리어 기업을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퀀텀 점프’를 겨냥하고 있는 정지선 회장의 복안이 실린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정지선 회장은 아버지 정몽근 명예회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자 그룹을 이어받았다. 2008년 공식 취임한 뒤 행보는 공격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룹의 경영 파악이 마무리된 뒤 젊은 패기를 앞세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2년 패션 기업 한섬 인수를 신호탄으로 거침없는 투자를 이어나갔다. 당시 여성복 1위 업체인 한섬을 인수하기 위한 4200억 원 통큰 투자는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 그해 가구업체 리바트를 인수했다. 2016년에는 면세점 시장에도 진출했다.
2018년에는 종합 건자재 기업 한화L&C를 인수하며 리빙·인테리어 사업을 강화했다. 2020년에는 SK바이오랜드를 통해 뷰티·헬스케어 시장 진출의 기반을 마련했다. 2021년 기업 복지 서비스 업체인 이지웰 인수에 1250억 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온라인 매트리스 1인자’인 지누스에 8947억 원을 베팅하며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정지선 회장은 지난 10년간 8곳의 기업을 인수하며 약 2조4000억 원의 거금을 쏟아 붓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SK네트웍스와 인수 경쟁 끝에 지누스를 품는 등 8개의 인수 기업 중 3곳이 리빙 사업이다. 리빙·인테리어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 만큼 이 분야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다.
정지선 회장은 현대백화점 지분 17.09%로 최대주주다. 현대그린푸드 지분도 12.7%를 갖고 있다. 동생 정교선 부회장은 현대그린푸드의 최대주주로 23.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현대백화점의 지분 12.05%를 보유한 대주주다.
이 같은 지분 관계로 인해 백화점·유통은 정지선 회장, 비유통은 정교선 부회장이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둘이 합심해서 그룹을 이끌어나가는 등 이상적인 '형제 경영'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정지선 회장과 정교선 부회장 모두 현대백화점의 사내이사다.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가 모두 연계되어있기 때문에 리빙·유통·패션·식품 사업, 백화점과 홈쇼핑 등의 플랫폼을 함께 이끌어가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 도약, 2030년 40조 시대 겨냥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회사의 역사를 담은 '현대백화점그룹 50년사'를 발간하고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다짐했다. 1971년 현대그룹 임직원들의 복지와 단체급식, 작업복 지원 등을 담당한 '금강산업개발'로 출발했다.
이어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개점하며 본격적으로 유통업에 뛰어들었고, 2000년 회사 이름을 지금의 현대백화점으로 바꿨다. 2001년에는 TV 홈쇼핑 사업권을 획득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2010년 장기 목표를 담은 '비전 2020'을 발표한 이후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으로 유통에 이어 패션, 리빙·인테리어까지 사세를 넓히고 있다.
정지선 회장은 미래 청사진인 ‘비전 2030’을 발표했다. ‘고객에게 가장 신뢰받는 기업’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공동의 이익과 가치 창출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매출 40조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유통, 패션, 리빙·인테리어 등 3대 핵심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맞춤형 성장전략을 수립했다. 또 기존 사업과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면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 신사업에도 적극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유통·패션·리빙인테리어를 3대축으로 성장해온 현대백화점그룹은 2010년 7조8000억 원의 그룹 매출이 2020년 20조 원까지 불어났다. 재계 순위(공정자산 기준)도 2010년 30위에서 지난해 21위까지 상승했다.
정지선 회장은 “불확실성이 상시화된 상황에서 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창출해 내기 위해 ‘비전 2030’을 수립하게 됐다”며 “비전 2030은 앞으로 10년간 그룹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와 사업 추진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반세기 동안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지속해온 저력을 바탕으로 비전 2030을 지렛대 삼아, 100년 이상 지속되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현대백화점은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을 겨냥하고 있는 만큼 ‘With Your Life, Better Your Life(고객의 생활과 함께하면서 더 나은 가치를 제공)’를 사업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의·식·주·문화 등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있어 고객의 가치를 높이고 새롭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안하겠다는 그룹의 의지다.
‘계열사별 맞춤형 성장전략’과 ‘그룹 사업 다각화 전략’을 투 트랙으로 추진해 그룹 매출 규모를 40조 원대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리빙 사업 부문의 매출 증가가 돋보인다. 지누스의 인수로 그룹의 리빙 사업 부문 매출은 3조6000억 원 수준으로 커진다. 2030 비전에서 제시한 리빙 사업 매출 2021년 2조5000억 원에서 2030년 5조 원대로 키우겠다는 목표에 차츰 다가가고 있다. 가장 비중이 큰 유통 부문의 경우 2030년까지 29조 원으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다.
40조 원 달성을 위해서 공격적인 사업 확대가 필수다. 정지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같은 과녁을 향해 정확히 쏘는 것보다 아무도 보지 못한 과녁을 쏘는 노력이 쌓일 때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내외부의 경쟁적 경합보다 협력과 연결로 가치의 합을 키워나가야 한다”며 새로운 소비 주체의 변화된 요구를 찾는 노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