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패션 대기업 삼성물산 패션부문(삼성물산)과 코오롱인더스트리FnC(코오롱FnC) 부문은 공통점이 있다. 과거 '빈폴'과 '코오롱스포츠'라는 당대 최고의 브랜드를 앞세워 승승장구했으나, 최근 5년 사이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출구를 찾던 양사는 2020년 겨울 나란히 수장을 교체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그 중심에는 '선택과 집중'을 내세운 이준서 삼성물산 패션부문 부사장과 유석진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대표이사 사장이 있다.
독이 든 성배
삼성물산과 코오롱FnC는 지난 2020년 12월 패션 부문을 이끌 이준서 부사장과 유석진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두 회사 모두 사정이 어려운 시기였다. 삼성물산은 2020년 매출이 1조5450억 원, 영업손실 360억 원을 기록했다. 적자 대부분이 '빈폴스포츠'에서 나왔다. 삼성물산은 브랜드 철수와 함께 임원 임금 10~15% 반납, 주 4일제 전환 및 무급 휴직을 받았다. 삼성물산 내에서 패션 부문은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코오롱FnC는 아웃도어 업계 선두권을 다투던 코오롱스포츠의 추락에 눈물을 흘렸다. 코오롱FnC는 코오롱스포츠 단일 브랜드 매출이 전체 비중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웃도어 붐이 꺼지면서 실적도 곤두박질쳤다. 코오롱FnC는 2020년 매출 8680억 원, 영업손실 107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2013년 매출 1조3146억 원을 작성한 뒤 2019년 9729억 원으로 1조 원 벽도 무너졌다.
신임 대표가 등장했지만, 업계 반응도 신통치 않았다. 새로운 수장에 대한 기대보다는 '반신반의'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부사장은 제일모직 출신의 '삼성물산 맨'이다. 그룹 내 요직을 거쳐 경영 사정에 밝고 패션에 정통하다. 그러나 일부에서 대대적인 혁신과 개혁이 필요한 상황에 이 대표가 적임자인지 아닌지에 물음표를 찍었다.
환영받지 못한 건 코오롱FnC를 이끌게 된 유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유 대표는 그룹 경영과 투자 전략을 세우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패션과는 사실상 연이 없었다. 유행이 빠르고, 대중의 니즈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패션업을 이끌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일부 매체는 유 대표의 선임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규호 코오롱FnC 최고운영책임자(COO)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패션 부문을 떠난 사실에 집중했다. 그룹이 사실상 패션 부분에 투자를 줄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흘러나왔다.
선택과 집중 두 대표 모두 각기 다른 이력과 색깔을 지녔지만, 선택과 집중이라는 분명한 목표는 같았다. 선임 이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이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 부사장은 빈폴스포츠를 비롯해 수익을 내지 못하는 브랜드는 접는 작업을 이어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영업조직을 영업본부로 통합하고, 온·오프 영업전략담당을 신설했다.
반면 삼성물산이 공식 수입해 최근 신명품으로 떠오른 톰브라운·메종키츠네·르메르·아미 등에는 힘을 줬다. 자체 운영 중인 SSF샵에 라이브커머스를 도입하며 MZ세대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성과가 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의 신명품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20~200% 늘었다. 특히 아미는 2030 소비자의 전폭적 지지 아래 매출이 200% 성장했다.
삼성물산은 2021년 매출 1조7700억 원, 영업이익 1000억 원을 기록하면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모든 직원이 7년 만에 100% 상여금을 받았다.
코오롱FnC는 골프에서 길을 찾고 있다. 유 대표는 부임 뒤 기존 2개 본부 8개 사업부를 14개 사업부 체제로 세분화했다. 영업 본부의 기능은 사업부 또는 브랜드로 이관해 각 브랜드에서 모든 과정을 완결할 수 있게 했다. 코로나19로 영골퍼가 늘어나자 왁·지포어·엘로드 등 골프웨어 전력을 쏟고 있다. 특히 왁은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사하고 미국 시장까지 진출한다.
반면 미운 오리가 된 코오롱스포츠는 등산이라는 고유의 색깔을 최대한 희석했다. 대신 코오롱스포츠의 대표 패딩 라인인 안타티카를 80만~120만 원에 판매하는 고가 정책을 폈다.
코오롱FnC는 지난해 내출 1조181억 원, 영업이익 384억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유 대표는 "매출 1조 원 복귀에는 브랜드와 조직 모두 체질 개선으로 어떤 변화에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K패션을 이끄는 대표 브랜드 하우스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코오롱FnC는 패션 부문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며 "신임 대표 부임과 함께 체질개선에 따른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당분간 두 회사의 변화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