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54)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이 '바람의 손자'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를 두고 한 말이다.
염경엽 위원장은 이정후가 프로에서 첫발을 내디딜 때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의 감독이었다. 휘문고를 졸업한 이정후는 2016년 6월 신인 1차 지명으로 넥센 유니폼을 입었고, 염경엽 위원장은 그해 10월까지 팀을 이끌었다. 이정후를 직접 지도하지 않았지만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단장과 감독을 맡아 프로야구 현장에서 그의 활약을 꾸준히 지켜봤다. 최근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기술위원장과 방송국 해설위원까지 겸임해 꼼꼼하게 선수를 체크하고 있다.
염경엽 위원장은 이정후에 대해 "특별함이 없다"고 단언했다. 의외일 수 있다. 이정후는 지난 17일 KBO리그 최연소(23세7개월28일)이자 최소 경기(670경기) 900안타를 달성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최연소(24세9개월13일) 기록과 자신의 아버지인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최소 경기(698경기) 기록을 함께 갈아 치웠다. 이틀 뒤에는 프로 통산 3000타석을 돌파, '타격의 달인' 장효조(0.331)를 제치고 KBO리그 통산 타율 1위(0.340)에 올랐다. KBO리그 통산 타율은 3000타석 소화가 기준. 최근 4년 연속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받은 이정후는 자타공인 리그 최고 타자다.
염경엽 위원장은 "이정후의 가장 좋은 점은 기본기"라며 "타격에 대한 기본과 야구에 대한 기본, 그리고 생각에 대한 기본이 잘돼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정후가 특별해서 잘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천재여도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오랜 기간 잘할 수 없다. (일본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와 다르빗슈 유는 천재가 아닌가. 성공한 사람은 다 똑같다. 이정후는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본을 잘 아는 선수"라고 강조했다. "특별함이 없다"는 건 이정후의 활약이 그만큼 더 대단하다는 역설적 표현에 가까웠다.
이정후는 자타공인 연습벌레다. 매년 리그 최상위 성적을 내지만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2020년 6월 4할에 육박하는 월간 타율(0.381)을 기록한 뒤 "타점을 더 해야 하고 볼넷도 더 골라내야 한다. 도루도 더 해야 한다. 할 게 많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 결과 2020년 데뷔 첫 두 자릿수 홈런(15개)을 때려냈고 지난 시즌에는 타격왕(0.360)까지 차지하며 '완성형 타자'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염경엽 위원장은 "이정후는 공을 보는 눈(선구안)과 자기만의 확고한 스트라이크존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격 타이밍을 만들어 내는 좋은 스윙까지 갖췄다"며 "타고난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야구를 대하는) 좋은 생각마저 갖고 있다"고 감탄했다.
이정후의 활약에 반색하는 건 고형욱 키움 단장도 마찬가지다. 고형욱 단장은 "타격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렇게 대단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고형욱 단장은 이정후를 지명한 2017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넥센의 스카우트 팀장이었다. 고 단장은 "이정후가 휘문중에 다닐 때부터 체크했다. 휘문중에서 이정후를 가르쳤던 코치가 현재 이상원 스카우트 팀장"이라며 "(이정후 지명은) 이상원 팀장이 강력하게 요구한 부분이었다. 당시 스카우트로 있었는데 (이정후에 대해) 능력치에 한계점이 없는 것 같다고 하더라. (당시에는 내야수였는데) 외야수로 돌리면 어마어마한 시너지 효과가 나올 것 같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키움의 거포 박병호가 KT 위즈로 FA(자유계약선수) 이적했다. 지난 24일에는 포수 박동원마저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됐다. 어느새 이정후 중심으로 팀이 재편됐다. 선수를 향한 구단의 신뢰가 대단하다. 고형욱 단장은 "태도나 인성, 팬들을 대하는 것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인터뷰까지 깔끔하게 잘한다"고 극찬했다. 키움 구단 관계자는 "최근 신인 박찬혁이 외야에서 실책하니까 어떻게 수비하면 되는지 조언을 해주더라. 후배들을 잘 챙기는 리더십 좋은 선수"라며 "이정후는 야구장 밖에서도 선수단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