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BO리그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다. 김광현이 6회말 김혜성을 투수 땅볼로 처리,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한 후 기뻐하고 있다. 고척=김민규 기자 구위를 갖춘 기교파 투수. 김광현(34·SSG 랜더스)이 진화했다.
김광현의 올 시즌 평균자책점은 10일 기준 0.47(38이닝 2자책점)이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선발 투수가 시즌 첫 6번의 등판에서 기록한 KBO리그 역대 최저 평균자책점. 세부 지표도 A급이다. 6번의 선발 등판에서 모두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했고, 피안타율(0.147)과 이닝당 출루허용(WHIP·0.71)도 흠잡을 곳이 없다. SSG의 선두 질주를 이끄는 주역이다.
성적만큼 흥미로운 건 달라진 투구 레퍼토리다. 김광현은 올 시즌 직구(포심 패스트볼) 비율이 전체 투구 대비 32.6%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진출 직전 시즌인 2019년과 비교하면 6.6%포인트(p)가 떨어졌다. 대신 슬라이더 비율을 37.7%에서 41.8%로 끌어올려 직구와 슬라이더 의존도가 '역전'됐다. 위기 상황이 되면 직구가 아닌 슬라이더 그립을 잡는다. 올해 잡아낸 삼진 39개 중 슬라이더 결정구가 22개로 직구(4개)를 압도한다.
구속 변화도 눈에 띈다. 김광현은 2019년 147㎞/h이던 직구 평균 구속이 올 시즌 145.3㎞/h로 소폭 하락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강속구에 의존하지 않고, 완급을 조절한다. '힘을 뺀' 투구 레퍼토리는 피네스 피처(finesse pitcher)에 가깝다. 파워 피처의 반대 개념인 피네스 피처는 구위로 타자를 압도하기보다 투구 강약 조절과 로케이션 조정에 능한 기교파 투수를 지칭한다. 류선규 SSG 단장은 "올해 김광현은 피네스 피처로 변화한 느낌"이라며 "MLB를 경험하면서 노련미가 생겼다. 그 전에는 윽박지르는 스타일이었지만 이젠 완급조절도 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광현을 피네스 피처로 단정하기 모호한 부분이 있다. 김광현의 올 시즌 PFR(Power Finesse Ratio) 수치가 1.21로 높다. PFR은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 투수 유형을 평가할 때 사용하는 지표 중 하나로 탈삼진과 볼넷을 더한 뒤 이닝으로 나눈 값이다. 피네스 피처는 파워 피처와 달리 탈삼진과 볼넷 허용이 모두 적어 PFR 수치가 1.0 이하로 낮게 측정된다. 김광현은 2007년 프로 데뷔 후 매년 PFR 수치가 1.1 이상이었는데 올해는 1.2를 넘겼다. 세이버매트릭스에선 파워 피처에 더 가까워진 것이다.
김광현의 PFR 수치는 세이버메트릭스 이론을 역행한다. 파워 피처로 분류하기엔 볼넷 허용이 적고, 피네스 피처라고 하기엔 탈삼진이 많다. 파워 피처와 피네스 피처의 장점만 흡수해 일종의 '파워 피네스 피처'가 된 셈이다. A 구단 전력분석 관계자는 "올해 김광현이 보여주는 투구는 이상적이다. 속구에 의존하지 않고 변화구 구사 비율도 높다. 구속을 떨어트렸으면 탈삼진이 줄어들 수 있는데 그렇지도 않다. 볼넷 허용도 적으니 타자들이 공략하기 더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자신감은 또 다른 무기다. 김광현은 지난 8일 키움 히어로즈전 6회 말 공 3개로 아웃 카운트 3개를 잡아냈다. 경기 뒤 그는 "공 3개로 아웃 카운트 3개를 잡는 게 내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 중 하나였다"며 "다음 버킷 리스트는 공 60개로 완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프로야구 역사상 정규이닝 기준 역대 최소투구 완투승은 1993년 윤형배(당시 롯데 자이언츠)가 기록한 83개. 완봉승을 포함하면 1987년 임호균(당시 청보 핀토스)의 73개다. '60구 완투'는 달성하기 쉽지 않은 목표지만 그만큼 마운드 위에서 거침없이 공을 던진다는 의미다. 완급조절까지 능수능란하게 하니 이닝당 투구 수가 14.1개로 적다. 규정이닝을 채운 27명의 투수 중 2위(1위 고영표·13.8개)다.
김광현은 2020년부터 2년 동안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에서 뛰었다. 주로 선발 투수를 맡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불펜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다양한 타자까지 상대하며 경험까지 쌓았다. 그는 지난 3월 SSG 입단식에서 "MLB 선수들은 힘과 스피드가 좋고, 내 구속은 좀 떨어졌다. 그래서 제구를 많이 신경 썼더니 늘더라. 역시 야구는 20년 넘게 해도 새롭게 배우고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