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프로에 데뷔한 이정후는 그해 11월 열린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APBC는 젊은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NPB), 대만(CPBL)의 만 24세 이하 또는 프로 입단 3년 이하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 당시 이정후는 박세웅(롯데 자이언츠) 구창모(NC 다이노스) 하주석(한화 이글스) 등과 대표팀의 준우승을 합작했다.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하면서 이정후의 국가대표 이력은 계속 쌓였다. 2018년에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AG)에 출전했다.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행운이 따랐다. 부상으로 빠진 박건우(NC)를 대신해 교체 선수로 대표팀에 승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팀 주루코치를 맡은 아버지 '바람의 아들' 이종범(현 LG 트윈스 2군 감독)과 함께 한국 AG 야구 사상 첫 '부자 금메달리스트’'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종범은 2002년 부산 AG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정후는 2019년 WBSC 프리미어12, 지난해에는 도쿄 올림픽까지 뛰었다. 1군에 데뷔한 뒤 열린 4개 국제대회에 모두 '개근'했다. 특히 도쿄 올림픽은 엔트리 경쟁이 치열해 KBO리그 외야수 중 4명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당당하게 주전 자리를 꿰찼다.
이정후는 당초 오는 9월 예정됐던 항저우 AG 출전도 유력했다. 이번 대회는 대표팀 세대교체를 위해 최종엔트리(24명)를 만 24세 이하 또는 입단 3년 차 이하 선수로 꾸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 5일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대회 연기를 발표해 일정에 물음표가 찍혔다. 구체적인 추가 발표가 없었지만 1년 연기가 유력하다.
이정후는 "국제대회가 있는 시즌에 잘해서 (대표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AG 출전에) 욕심이 났는데 코로나 때문에 미뤄졌다고 하니까 팀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 점은 좋은 것 같다"며 "국가대표는 하면 좋고 행복하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자리다. (연령 제한이 있는 만큼) 어린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 기회인데 미뤄져서 아쉽다"고 했다.
항저우 AG가 연기되면서 WBC 출전에 대한 갈망은 더 커졌다. WBC는 미국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이 주도해 만든 국가대항전이다. MLB 사무국은 현역 빅리거들의 올림픽이나 프리미어12 출전을 불허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거의 WBC 참가는 적극적으로 장려한다. 국가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총출동하는 WBC는 예비 빅리거들의 전초전이 되기도 한다. 제2회 대회가 열린 2009년에는 베이스볼아메리카(BA)가 'WBC 유망주 톱10'을 선정했고, 이 중 상위 5명(다르빗슈 유·아롤디스 채프먼·이와쿠마 히사시·다나카 마사히로·류현진) 모두가 대회 후 MLB 무대를 밟았다. 2006년 시작된 WBC는 2009년부터 4년 간격으로 열린다. 하지만 지난해 제5회 대회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연기됐고 내년 봄 개최가 유력하다. 이정후가 WBC까지 출전한다면 AG과 올림픽에 이어 야구 국제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이정후는 "어떤 국제대회든 너무 가고 싶은데 WBC는 의미가 남다르다"며 "AG, 올림픽, 프리미어12를 다 해봤는데 WBC만 안 해봤다"고 말했다. 이어 "(WBC는) 야구의 월드컵 같은 대회다.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선수들과 경기할 기회가 흔치 않다. 좋은 야구장에서 플레이하는 것도 설렌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종범은 2006년 WBC에서 대표팀 주장을 맡아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끈 바 있다. 이정후는 "아빠가 (WBC는 다른 국제대회와 달리) 선수들 대접하는 게 너무 좋다고 하시더라. 그런 것도 경험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해외 진출을 준비 중인 이정후에게 WBC는 좋은 쇼케이스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역 빅리거의 출전이 가능한 대회인 만큼 선배 김하성(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과 태극마크를 함께 달 수도 있다. 김하성은 MLB 진출 전 키움에서 뛰며 이정후와 한솥밥을 먹었다. 이정후는 "하성이 형에게 (WBC 때 함께 뛰자고) 만날 얘기하고 있다. 내가 말한다고 (국가대표가) 되는 건 아니지만 하성이 형과 같이 뛰는 게 행복하고 좋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