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현대판 판옵티콘(원형 감옥) 논란을 불식하는 주 4.5일 근무제를 시행한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부럽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일단 분위기는 긍정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내달 4일부터 '격주 놀금' 근무제를 시범 운영한다. 2주에 한 번 금요일을 쉬는 날로 정해 주 4일만 근무하는 제도다.
일하는 4일은 임직원이 원하는 장소에서 업무를 볼 수 있다. 대신 오후 2~5시는 동료와의 효율적인 협업을 위해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기술·물리적인 제한은 없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사실이냐" "갓카오" "부럽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카카오는 지난달 말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근무제' 도입을 발표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근무 장소와 관계없이 가상의 공간에서 언제나 연결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골자였다.
그런데 음성채널을 실시간 업무창구로 활용하는 부분이 문제가 됐다. 코어타임(집중근무시간)의 개념을 적용하면서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항상 이어폰을 끼거나 스피커를 켜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원격근무 과정에서 신뢰를 쌓았는데도 회사가 음성으로 직원들을 감시한다는 내부 불만이 폭발했다. 결국 하루 만에 재검토를 결정했다.
이후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메타버스 사업 전략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신기능을 근무제와 연계할 것이냐'는 질문에 "고려하지 않는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카카오는 새로운 근무제도에서 음성채널 도입 여부를 '필수'에서 '권장'으로 수위를 낮췄다. 카카오워크나 음성채널 디스코드 등 조직에 맞는 솔루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업무는 주 1회 오프라인 만남에서 해결하도록 권장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강제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출근'이라는 표현을 '만남'으로 순화했다"고 말했다.
한차례 홍역을 치른 카카오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구성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취합했다. 노조 및 노사협의체와 만나 합의점을 도출했다.
발 빠른 대응에 직원들의 볼멘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남궁훈 대표가 강조한 메타버스 근무 형태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남궁훈 대표는 처음 근무제 개편을 선언했을 당시 "업무하는 데 물리적 공간보다 '연결'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결론 내렸다"며 "메타버스 근무제가 구성원들의 효율적인 업무를 돕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카카오도 '책임'보다 '자율성'에 더 무게를 둔 네이버의 신규 근무제와 궤를 같이하게 됐다.
네이버도 오는 7월부터 원격근무에서 '커넥티드 워크' 근무제로 전환한다.
반기에 한 번씩 조직과 진행 프로젝트 등 상황을 고려해 주 3일 이상 사무실로 출근하는 '타입 O'와 원격을 기반으로 하는 '타입 R' 중 선택할 수 있다. '타입 R' 직원들이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공용좌석도 마련한다.
신규 입사자의 적응과 협업을 위한 미팅 등 대면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별도 가이드도 제작한다. 카카오처럼 음성채널과 같은 협업 도구를 따로 제안하지는 않았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일의 본질'에 집중해 직원들이 최적의 환경에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