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4회말 1사 키움 이정후가 솔로 홈런을 쳐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는 올해도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23일 KBO리그 타격 1위로 올라선 데 이어 홈런까지 펑펑 쏘아 올리고 있다. 27일 기준으로 13개를 터트려 2020년 달성한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15개)을 가뿐하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유독 전년 대비 떨어진 기록이 하나 있다. 바로 인플레이 타구의 타율을 의미하는 BABIP(Batting Averages on Balls In Play)다.
이정후의 올해 정규시즌 BABIP는 0.335이다. 개막 후 5월까지만 하더라도 BABIP가 0.311에 그쳤다. 6월에 수치를 끌어올렸지만, 여전히 데뷔 첫 타격왕을 차지한 지난해(0.373)보다 4푼 가까이 낮다. 올 시즌 리그 평균 BABIP가 0.316(규정타석 기준)에서 0.317로 소폭 상승했다는 걸 고려하면 이정후의 흐름은 '역행'에 가깝다.
BABIP는 페어 지역에 떨어진 인플레이 타구에 주목한다. 수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홈런과 삼진, 볼넷은 계산에서 제외한다. 공식은 '(안타-홈런)/(타수-삼진-홈런+희생플라이)'다.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많이 만들어내거나 주력이 평균 이상인 타자들의 BABIP가 높게 측정된다. 강한 타구는 수비를 뚫어낼 수 있고 주력이 좋으면 아웃이 될 내야 땅볼이 안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올 시즌 리그 BABIP 1·2위는 소크라테스 브리토(KIA 타이거즈·0.377)와 조용호(KT 위즈·0.376). 브리토는 타구 속도가 빠르고 조용호는 주력이 좋은 타자다.
두 가지 조건(라인드라이브 타구·주력) 이외에 흔히 '바빕신(神)'이라 부르는 '운'의 영역도 간과할 수 없다. 아무리 페어 지역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려도 호수비에 걸리면 BABIP 수치는 낮아진다. 라인드라이브 타구 비율이 높은 이정후는 주력까지 수준급인 타자다. 때론 운까지 따르면서 통산 BABIP가 0.359로 높은 편이다. 2018년에는 0.390으로 리그 평균(0.341)과 5푼 가까이 차이가 났다.
지난 19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KBO리그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4회말 1사 솔로 홈런을 터트린 키움 이정후가 더그아웃에서 송성문으로부터 챔피언 벨트를 건네 받고 있다. [연합뉴스] 올 시즌 이정후는 홈런이 늘었다. 일반적인 타자들은 홈런과 삼진이 비례한다. 담장 밖으로 타구를 넘기려면 그만큼 스윙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BABIP 수치는 보통 하락한다. 2019년 홈런 15개(삼진 113개)를 기록한 김재환(두산 베어스)은 2020년 정확히 전년 대비 2배인 홈런 30개(삼진 154개)를 때려냈다. 그의 BABIP는 2019년 0.331에서 이듬해 0.317로 떨어졌다. 이정후의 BABIP 수치 변화의 원인으로 '급등한' 홈런 수치를 꼽는 이유다.
눈길을 끄는 건 삼진 추이다. 이정후는 타석당 삼진이 2020년 0.07에서 올 시즌 0.04(리그 평균 0.16)로 줄었다. 규정 타석을 채운 50명의 타자 중 최저다. 홈런이 늘었는데 오히려 삼진이 줄어든 특이한 케이스다. A 구단 데이터분석원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이정후의 삼진이 줄었고, 장타율이 늘었다. 콘택트와 파워가 모두 성장해 굳이 '바빕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성적 유지가 가능하다"며 "장타와 삼진은 대척점에 있는 관계인데 이론상으로 이정후가 최상의 케이스를 구현한 셈이다. 이정후를 투수로 빗대면 '구속이 증가했는데 제구까지 향상한 것'이다. 그만큼 대단한 타자"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정후가 아니었으면 (지금 기록 중인) BABIP보다 더 떨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이정후는 최근 "평균 BABIP보다 너무 많이 낮아서 (내) 타율이 지난해보다 좋지 않다. 대신 타구의 질이 괜찮기 때문에 BABIP만 좋아진다면 타율이 올라갈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BABIP는 평균에 수렴한다. 4, 5월 하위권이었던 이정후의 BABIP도 6월 들어 평균을 향해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타율이 좀 더 향상할 여지가 충분하다. 강병식 키움 타격 코치는 "이정후는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급 콘택트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