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지(28)의 별명은 ‘메이저 퀸’이다. 그는 7년 전인 2015년 무서운 기세로 메이저 트로피를 쓸어 담았다.
전인지는 그해 5월 일본여자투어 살롱파스컵, 7월 미국 US여자오픈, 그리고 국내 대회인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한 시즌 한·미·일 메이저 대회 석권이었다. 비록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전인지가 ‘메이저 퀸’임을 증명하는 진기록이었다.
전인지는 2016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진출해 메이저 트로피를 추가했다. 에비앙 챔피언십 21언더파 우승으로, 당시 기준으로 역대 PGA투어와 LPGA투어 72홀 최저타 신기록이었다.
하지만 이후 주춤하던 전인지는 2018년 10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 이후 긴 슬럼프에 빠졌다.
장기인 정교하고 안정감 있는 플레이가 사라졌다. 악플에 시달리면서 멘털 관리에 어려움을 겪다가 거식증을 겪기도 했다. 심기일전을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적도 있다. 하지만 반등은 없었다. 늪 같은 슬럼프가 길어지자 급기야 2020년에는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전인지는 코로나19로 투어 대회가 느슨하게 열리는 동안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샷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고, 안정감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우승을 신고했다.
전인지는 27일(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세즈다의콩그레셔널 컨트리클럽(파72·6831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메이저 대회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총상금 90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3오버파 75타를 쳤다.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로 공동 2위 그룹을 한 타 차로 따돌렸다. 무려 3년 8개월 만의 우승이다.
전인지는 대회 2라운드까지 압도적인 선두를 유지했다. 3라운드에도 1위는 지켰지만 다소 흔들렸다.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는 시작부터 불안했다. 2번(파3), 4번(파4), 6번(파5) 홀에서 보기가 나왔다. 그 사이에 렉시 톰프슨(미국)이 버디 2개를 잡아내며 2타 앞선 선두로 역전했다.
하지만 전인지는 편안한 표정이었고,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추격하는 톰프슨이 조급했다. 톰프슨 역시 2019년 이후 우승이 없다. 톰프슨은 후반 라운드에서 버디와 보기를 반복하며 들쭉날쭉한 플레이를 했다. 14번 홀(파4)에서는 50㎝짜리 짧은 퍼트를 놓쳐 보기를 했다. 전인지는 파 세이브를 이어가다가 16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 동률을 이뤘다.
승부처는 17번 홀(파4)이었다. 톰프슨이 세컨드 샷을 그린에 올려 버디 기회를 잡고도 스리 퍼트로 보기에 그쳤다. 전인지가 파로 막아내며 1위로 올라섰다. 18번 홀(파4)에서 톰프슨은 버디 기회를 또 놓쳤고, 침착하게 파 세이브한 전인지가 우승을 확정했다. 전인지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우승 상금 135만 달러(약 17억5000만원)다.
전인지는 LPGA 통산 4승 중에 3개를 메이저 트로피로 장식했다. 오랜 침묵을 메이저 대회에서 깨면서 메이저 여왕답게 부활했다.
한편 전인지는 2020년 US여자오픈(김아림 우승) 이후 이어졌던 LPGA투어 메이저 대회 한국 선수 무승(7개 대회 연속) 기록도 깼다.
톰프슨과 민지 리(호주)가 최종합계 4언더파 공동 2위를 기록한 가운데 김효주, 최혜진, 김세영이 최종 1언더파 공동 5위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지은희는 이븐파 공동 10위다.
전인지는 "슬럼프에 빠졌을 때 골프를 그만두고 싶었다"며 "18번 홀을 마치고 ‘해냈다’, ‘끝냈다’는 느낌이 들어 눈물이 났다.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에게 우승으로 보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유독 메이저 대회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전인지는 "메이저 코스는 관리가 잘 돼 있고, 많은 분이 노력을 쏟는다는 게 느껴진다. 경기하기 쉽지 않아 도전 정신을 느낀다"며 "그런 것들이 골프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매 샷을 도전하며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메이저 3승을 했으니 이제 새 목표가 생긴 것 같다”는 전인지는 오는 8월 열리는 시즌 AIG 위민스 오픈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