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36·KT 위즈)는 지난 28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개인 통산 350번째 홈런을 때려냈다. 전날까지 어깨를 나란히 했던 KIA 타이거즈 최형우(통산 349홈런)를 따돌리고 '통산 홈런' 단독 5위에 올랐다. 이튿날(29일) 삼성전 2회 초 첫 타석에서도 홈런 1개를 더 추가하며 종전 단독 4위였던 '양신' 양준혁과 같은 위치에 섰다.
박병호는 지난달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통산 홈런 순위에 대한 욕심은 없다. 굳이 기록 목표가 있다면, 400홈런을 넘어서는 것이다. 홈런 타자로서 의미 있는 이정표이고, 나에게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안긴 KT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담담하게 말한 바 있다.
박병호는 프로 데뷔 후 몇 년 동안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차 지명을 받아 LG 유니폼을 입었지만, 입단 첫 두 시즌(2005~2006) 동안 타율 0.177 8홈런 34타점에 그쳤다. 타석당 삼진은 무려 0.31개. 퓨처스리그(2군)에선 좋은 성적을 남겼지만 1군 무대에서는 방망이가 얼어붙었다. 1·2군을 오가던 그는 결국 2011년 7월 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로 트레이드됐다.
박병호가 기량을 꽃피우며 홈런왕으로 올라선 건 이적 이후다. 입단 7년 차, 우리 나이로 스물여섯 살까지는 단 한 시즌도 규정 타석을 채우지 못했다. 그가 통산 홈런 기록에 초연한 이유다. 그는 "히어로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때린 홈런은 30개도 되지 않을 것이다. (통산 홈런 1위) 이승엽 선배나 (2위) 최정은 데뷔 초기부터 홈런을 많이 쌓지 않았나. 내가 그런 선수들을 따라가긴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홈런 얘기를 나누던 박병호가 눈을 반짝이며 되물은 기록이 있다. 바로 '타수 대비 홈런'이다. 얼마나 자주 홈런을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지표다. 박병호는 "통산 300홈런을 넘은 타자들의 타수 대비 홈런 기록이 궁금하긴 하다"고 했다. '궁금하다'는 그의 말에서 이승엽·최정과도 견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전해졌다.
박병호는 29일까지 통산 4558타수에서 351홈런을 기록했다. 12.99타수당 1개꼴로 홈런을 때려낸 셈이다. 박병호는 숫자가 적을수록 좋은 이 기록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통산 홈런 1위(467개)에 올라 있는 이승엽은 KBO리그에서 뛴 15시즌 기준으로 15.27타수당 1홈런을 기록, 2위에 올라 있다. 이승엽·박병호와 함께 단일 시즌 50홈런 클럽에 가입해 있는 심정수(은퇴)가 타수 대비 홈런 3위(15.40)다. 메이저리그(MLB) 통산 최다 홈런(762개)을 기록한 배리 본즈(은퇴)가 12.92타수당 1개꼴로 홈런을 쳤다. 박병호의 홈런 시계가 얼마나 빨리 도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병호는 평소 "단타보다는 홈런으로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게 내 임무다. 꾸준히 홈런을 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올 시즌 홈런 1위(24개)를 독주하며 역대 최고령(만 36세) 홈런왕에도 다가섰지만, 타이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박병호는 40대에 들어선 뒤에도 20홈런 이상 때려낸 이승엽을 언급하며 "선배의 길을 따라가고 싶다"고 했다. 박병호가 이승엽의 통산 홈런을 넘어서긴 어렵다. 그러나 그의 홈런 페이스가 급격하게 꺾이지 않는다면, KBO리그에서 '가장 자주' 홈런을 친 타자로는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