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은 아쉬워하는 대신 또 다른 목표를 말했다. 그는 19일(한국시간)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 필드에서 열린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결승에서 개인 실외 대회 타이기록인 2m35를 넘어 은메달을 땄다. 한국 육상의 역사였다.
한국 선수가 실외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높이뛰기 메달을 따낸 건 우상혁이 처음이다. 한국 선수의 세계육상선수권(실외) 메달은 2011년 대구 세계선수권 남자 경보 동메달리스트 김현섭 이후 11년 만이며, 은메달은 역대 최고 성적이다.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메달 세리머니를 한 건 우상혁이 한국 최초다. 김현섭은 2011년 대회 결승에서 6위를 기록했는데, 이후 순위가 앞섰던 선수 3명의 약물 복용이 드러나 2019년 뒤늦게 동메달을 전달받았다.
우상혁은 이번 대회 예선 공동 1위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 경기 내내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2m19, 2m24, 2m27, 2m30을 모두 1차 시기에 넘었고, 성공한 후에는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세리머니를 했다.
결승에서 그는 2m33에 도전했다가 1, 2차 시기에서 실패했다. 그러나 3차 시기에서 완벽한 자세로 바를 넘었다. 많은 경쟁자가 떨어져 나간 후 우상혁은 2m35를 2차 시기에 넘어 은메달을 확보했다. 남은 건 무타즈 에사 바심(카타르)과의 우승 경쟁이었다.
바심은 2m37을 첫 시도에 곧바로 넘었다. 반면 우상혁은 1차 시기에서 2m37에 실패했고, 금메달 경쟁을 위해 바를 2m39로 높여 도전했다. 그러나 남은 두 차례 기회에서 모두 2m39를 넘지 못했다. 바심 역시 2m39에는 실패했지만, 2m37을 이미 성공해 금메달을 확정했다.
우상혁은 우승을 목표로 잡았던 만큼 마지막 시도가 불발되자 다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또 다른 목표였던 실외 대회 개인최고기록 경신도 다음으로 미뤘다. 그러나 이내 카메라를 향해 유니폼 가슴의 ‘KOREA’를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시그니처인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경기 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상혁은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 기분이 정말 좋다"면서도 "세계선수권, 올림픽이 남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금메달을 따는 '더 역사적인 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육상연맹이 전한 우상혁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이날 2m33에서 3차 시기까지 가는 등 다소 매끄럽지 못한 운영이 아쉬웠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도 오늘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 바심의 컨디션이 더 좋았던 것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바심은 지난 2017년과 2019년 대회에 이어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3위는 2m33을 넘은 안드리 프로첸코(우크라이나)가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부쩍 성장한 우상혁의 기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도쿄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4위에 올라 한국 육상 트랙&필드 종목에서 올림픽 최고 성적을 냈다. 이어 올해 세계실내육상선수권 우승(3월 20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2022 다이아몬드리그 개막 시리즈 우승(5월 14일 카타르 도하)을 거뒀고, 세계랭킹 1위도 찍었다. 이어 실외 세계육상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우상혁은 10대 시절부터 주목받는 대형 유망주였다. 그러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따낸 뒤 부상과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때 대표팀의 전담지도자 김도균 코치를 만나면서 우상혁은 다른 차원의 선수로 성장했다.
김도균 코치는 우상혁을 혹독한 훈련으로 다그치기보다 믿음을 주고 더 멀리 보는 훈련을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좋아하는 우상혁에게 빠른 입대를 권유해 조용한 훈련 분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이후에도 충분한 휴식을 줬다. 우상혁이 집중할 수 있을 때 더 훈련하도록 배려했다.
우상혁은 어린 시절 당한 교통사고 탓에 오른발이 왼발보다 1㎝ 정도 더 짧다. 육상 선수로서 큰 핸디캡이지만 이 역시 성공적으로 극복해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상혁은 도쿄 올림픽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여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메이저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겨루는 세계 톱랭커로 점프했다. 우상혁은 이번 대회 은메달 상금 3만5000달러(4600만원)와 대한육상연맹 경기력향상금 규정에 따라 포상금 5000만원을 받는다.
올 시즌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상혁은 8월 27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다이아몬드리그, 9월 8∼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치르는 다이아몬드리그 최종전에 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