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그냥 평범한 체대생이었다. 하지만 군복무를 하면서 TV로 격투기를 접한 뒤 매력에 푹 빠졌다. 제대 후 무작정 킥복싱 체육관을 찾아갔다. 복학 후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에 킥복싱을 수련했다.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하면서 격투기 매력에 더 흠뻑 빠졌다.
재능도 있었다. 킥복싱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14 인천아시안게임 킥복싱 시범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종합격투기에 본격 뛰어들어 일본 단체 '히트'와 국내 단체 '더블지FC'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젠 아시아 최대 단체로 인정받는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있다. 한국 종합격투기 새로운 스타이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파이터로 성장한 옥래윤(31·팀매드)의 스토리다.
옥래윤은 2014년 데뷔해 벌써 20전(16승 3패)을 눈앞에 둔 베테랑이다. 하지만 이름을 알린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주로 활약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것은 원챔피언십에 데뷔하고 나서다.
원챔피언십은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격투기 단체다. 종합격투기는 물론 킥복싱, 복싱, 무에타이, 그래플링 등 다양한 스타일 경기를 개최하는 원챔피언십은 아시아를 넘어 미국 UFC와 견줄만한 글로벌 대회로 발돋움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재일동포 추성훈이 일본 베테랑 파이터 아오키 신야와 대결을 펼쳐 2라운드 TKO승을 거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옥래윤은원챔피언십에서 '초고속 승진'의 대명사다. 지난해 4월 원챔피언십 데뷔전에서 러시아 강자인 마라트가푸로프(39)를 압도한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 이어 불과 3주 뒤 전 UFC 챔피언 에디 알바레즈(미국)를 KO 직전까지 몰아붙인 끝에 판정승을 따내면서 챔피언 도전권을 따냈다.
그리고 약 5개월이 지난 작년 9월 당시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한국계 캐나다인 크리스찬 리(한국이름 이승룡)와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판정승을 거뒀다. 원챔피언십 입성 3전 만에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옥래윤의 격투기 인생은 불과 1년여 만에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었다. 이 대회 저 대회를 떠돌아다니며 힘겹게 운동을 했던 옥래윤은 이제 경기당 억대 파이트 머니를 받는 톱클래스 선수로 성장했다.
원챔피언십이 처음부터 옥래윤에게 기대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데뷔전 상대였던 가프로프는 러시아 최대 단체인 M-1 챔피언 출신이었다. 두 번째 대결을 펼쳤던 알바레즈는 전 UFC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다. '악동' 코너 맥그리거(아일랜드)와 싸워 타이틀을 잃었지만, 알바레즈는 세계 최고 파이터 중 한 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옥래윤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두 선수의 먹잇감으로 던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본인도 "내가 상대를 빛나게 해주는 '떡밥'인가"라는 의심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옥래윤은 다른 이의 먹잇감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오히려 거물들을 맛있게 요리해 잡아먹으면서 스스로 거물로 성장했다. 특히 원챔피언십이 공을 들여 모셔온(?) 알바레즈를 압도적으로 이기자 대회 주최사가 대하는 반응이 확 달라졌다. 다음 경기에서 타이틀전을 치르게 됐고 데뷔 5개월 만에 챔피언 벨트까지 차지했다.
옥래윤은 오는 26일 싱가포르에서 원챔피언십 챔피언으로서 첫 방어전을 치른다. 상대는 앞선 경기에서 타이틀을 빼앗았던 전 챔피언 크리스찬 리다. 11개월 만에 챔피언과 도전자 입장이 바뀌어 리매치를 치른다. 크리스천 리는 비록 옥래윤에게 패해 타이틀을 잃었지만, 원챔피언십이 가장 신경쓰는 스타다. 그전까지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역사상 두 번째로 긴 861일 동안 타이틀을 지켰다.
크리스찬 리는 지난 경기에서 옥래윤에게 패한 뒤 "내가 진 경기가 아니었다"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각종 인터뷰에서 판정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옥래윤을 도발했다. 옥래윤은 그런 크리스찬 리를 '시끄러운 고양이'에 비유했다. 진짜 맹수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강하다는 것을 주변에서 본능적으로 아는데 자기가 약한 것을 아는 고양이는 자신을 과장하기 위해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옥래윤은 이번 크리스찬 리와 재대결을 통해 진정한 챔피언으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어렵게 올라온 기회인 만큼 절대 놓치지 않고 정상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내가 챔피언에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요. 계속 가장 높은 자리를 지키면서 제 커리어를 높여가는 게 우선적인 목표입니다. 이번에는 판정 불만이 나오지 않도록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 확실하게 이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