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서 전기차를 대상으로 한 리콜(자발적 시정조치) 건수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도 전기차 증가와 맞물려 리콜과 정비, 수리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지만, 서비스센터나 정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관련 인프라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상반기 리콜 10만7494대…작년치 이미 넘어 지난달 31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전기차 안전결함 관련 리콜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기차 관련 리콜 대수는 10만7494대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9만9008대) 리콜 대수를 이미 뛰어넘은 수치다. 2017년 불과 3456건에 불과했던 전기차 리콜은 2018년 1만2264대로 증가하기 시작해 2019년 1만3024대, 2020년 8만604대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
전기차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리콜도 급증한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2017년 2만5108대에서 2019년 8만9918대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23만1443대를 기록, 20만대를 돌파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29만8633대가 팔렸다.
업계는 올해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가 45만대 전후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친환경 정책의 하나로 2022년까지 45만대의 전기차(누적 등록 기준)를 보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올해는 단순한 부품 고장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고전압 배터리 충격 완화 패드, 제어장치의 소프트웨어 설계 오류 등 전기차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대거 포함됐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판매되는 차량이 늘어나면 리콜도 덩달아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도 "올해는 단순 부품이 아닌 전기차 전용 부품에서 문제가 많이 발생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리콜왕은 테슬라
올해 리콜 건수가 많이 늘어난 데는 미국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 영향이 컸다. 올 상반기 테슬라 리콜 규모는 4만1498대로 가장 많은 전기차를 리콜했다. 전년 동기 대비 3000% 이상 늘어난 수치다.
모델3(2만7622대), 모델Y(1만1030대), 모델S(3850대), 모델X(6대) 등이 CPU 열성능 개선 문제, 후방카메라, 안전벨트 등 관련 문제로 리콜됐다.
이어 현대차·기아가 전자식변속제어장치(SCU) 문제로 5만8000여 대를 리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 현대차는 아이오닉5 등 4개 차종에서 전자식변속제어장치 오류로 경사로 주차 시 차량이 미끄러질 가능성을 확인해 리콜 조치했다. 기아도 EV6에서 같은 문제를 발견해 1만8593대를 리콜했고, 카니발 등 5개 차종은 에어백 경고등 결함 문제로 3447대 리콜했다.
올 하반기에도 전기차 관련 리콜은 끊이질 않고 있다.
BMW코리아는 최근 국내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출시한 i4, iX 등 신규 전기차 2종에서 화재 가능성이 발견돼 리콜을 시행 중이다.
리콜 대상 차량에는 배터리셀 생산 공정에서 손상된 음극판 조각이 배터리셀 내부에 유입돼 고전압 배터리에 단락(쇼트)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경우 셀 모듈이 방전되고 화재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푸조도 최근 e-208, e-2008 등 전기차 2종에 대한 리콜을 개시했다. 각 차량의 에어컨 공기 압축기를 제조하는 공정에서 전동 모터의 구리선 피복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확인됐다.
해당 장치를 장착한 차량에서 구리선이 에어컨 냉매나 수분에 노출될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부식돼 저항이 증가한다. 차량 진단 소프트웨어가 이를 감지하고 메인 배터리의 릴레이를 차단해 파워트레인 작동을 멈추면 시동이 꺼질 수 있다. 리콜 대상 차량은 일정 기간 생산된 1446대다.
제재 강화해 안전성 높여야
최근 전기차 결함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급발진이나 화재사고 결함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자율주행 기능의 경우 바로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에 국회에서는 보완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전기차의 제작사 결함 시정 조치로 차량 성능 저하가 발생했거나 전기차 주행가능거리 과다 표시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경우 제작사가 차량 소유자에게 경제적 보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홍철 의원은 "최근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 보급이 점차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법령이 피해자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만큼, 법령개정을 통해 소비자에 대한 제작사의 보호책임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리콜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전용 서비스센터나 정비 인력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은 현대차만 봐도 전국 1300여 개 정비소 중 371곳 만이 전기차 전담 센터를 운영 중이다. 르노코리아의 경우 410곳으로 가장 많긴 하나 상당수가 블루레벨(전기차에서 고전압과 무관한 일반 정비)이다. 한국GM도 413곳 중 99곳 만이 수리가 가능하다.
수입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전국에 57개의 서비스센터가 있지만, 이 중 36곳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아우디는 전기차 수리가 가능한 서비스센터가 9곳이며 5곳이 수도권에 위치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1만7828대를 판매한 테슬라의 경우 전국에 서비스 센터가 단 8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