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3년 피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와 박찬호의 도움으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전력분석파트 업무를 수행하며 값진 경험을 쌓았다. 그 인연을 이어온 덕분에 올해는 샌디에이고 프런트 오피스의 배려로 MLB 운영과 육성 시스템을 체험할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됐다. 부족하지만 필자의 경험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조시, 올 시즌 파드리스는 리그 우승이 목표인데, 그걸 위해 어떤 계획과 준비를 했는지 궁금해."
지난 5월 말 조시 스테인 샌디에이고 부단장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샌디에이고는 '지구 라이벌' LA 다저스와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1위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필자가 2013년 샌디에이고 구단에서 연수할 당시 오퍼레이션 디렉터였던 스테인 부단장은 현재 선수 영입과 계약 등 선수단 운영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샌디에이고 구단이 지구 우승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어떤 준비를 했는지 들을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 구단은 2014년 8월 AJ 프렐러가 단장으로 부임한 뒤 스타급 선수를 쓸어모았다. 2015년 '윈나우'를 목표로 에이스 제임스 실즈를 비롯해 크렉 킴브럴·맷 켐프 등을 영입했다. 하지만 2015시즌 74승 88패(승률 0.457)에 머물러 NL 서부지구 4위로 포스트시즌(PS) 문턱을 넘지 못했다. 투자 대비 처참한 실패였다.
스테인 부단장에 따르면 이후 샌디에이고의 구단 수뇌부와 오너십 그룹은 우승 전력을 꾸리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면서 선수 스카우트와 육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확보한 자금과 유망주를 묶어 다르빗슈 유(전 시카고 컵스) 매니 마차도(전 LA 다저스) 블레이크 스넬(전 탬파베이 레이스) 조 머스그로브(전 피츠버그 파이리츠) 션 마네아(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을 차례로 영입, 우승 전력을 갖췄다. 지난 8월에는 '슈퍼스타' 후안 소토(전 워싱턴 내셔널스)까지 트레이드했다.
MLB 구단들은 보통 유망주들이 주력 선수로 성장했을 때 막대한 비용을 써서 외부 선수를 영입한다. 샌디에이고 구단은 5월 말 기준 선발 투수 3명(머스그로브·마네아·마이크 클레빈저)이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릴 예정이었던 만큼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여 다른 팀으로부터 선수를 수혈했다. 유망주들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퍼즐을 맞추기 위해 투수 매켄지 고어를 비롯해 애써 키운 유망주를 내보내는 트레이드까지 단행했다. 많은 유망주를 유출해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만큼 우승 전력을 구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했다.
MLB 구단의 목표는 당연히 월드시리즈(WS) 우승이다. 그리고 WS로 가는 첫 단계인 지구 우승을 위해 평균적으로 정규시즌 90승 이상을 필요로 한다. 구단들은 기존 선수와 새롭게 영입할 수 있는 FA 선수, 유망주와 부상 선수 등을 고려해 전력을 꾸린다. 90승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자금과 유망주를 활용해 부족한 승리를 채워줄 수 있는 선수를 보강한다. 그런데도 전력이 안정되지 않다고 판단하면 선수 스카우트와 유망주 육성에 포커스를 맞춰 팀을 운영하기도 한다.
KBO리그 구단들은 PS 진출을 위해 약 80승을 목표로 시즌을 계획한다. 2000년 이전에는 경쟁력 있는 선발진, 안정감 있는 불펜, 스마트한 포수, 출루율 높은 리드오프, 파괴력 있는 중심 타선까지 다섯 가지 요소를 갖춰야 PS 무대를 밟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견고한 센터라인과 주전급 백업(포수1, 내야1, 외야1)이 더해져 일곱 가지 요소로 평가한다. 이른바 리그 내 '왕조'를 구축했던 2000년대 후반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와 2010년대 중반 두산 베어스는 상기 요건을 충족시킨 팀들이었다.
일곱 가지 요소를 모두 구축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최대한 많은 우승 요소를 갖춰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계획을 했느냐가 아니라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준비를 했느냐다.
구단은 경쟁력 있는 전력을 갖추기 위해 스토브리그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 외국인 선수를 신중하게 선택하고 부진 및 부상에 대비해 플랜 B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시즌 중에는 상황에 따라 트레이드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코칭스태프 및 전력분석 파트를 포함한 선수단은 마무리 훈련부터 스프링캠프까지 훈련 계획을 세밀하게 세우고 움직여야 한다.
프런트는 최악을 대비하고 선수단은 최선을 추구할 때 성공적인 시즌에 다가가게 될 수 있다. "모든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 MLB에서 스프링캠프와 팜 시스템을 고안한 전설적인 단장 브랜치 리키가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