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39·롯데 자이언츠)도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의 타구추적시스템(HTS)에 따르면, 올 시즌 이대호의 인플레이 타구 속도는 133.6㎞/h(12일 기준)다. 이는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KBO리그로 복귀한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 최근 3년 연속으로 그의 타구 속도(137.6㎞/h→135.5㎞/h→133.6㎞/h)는 꾸준히 하락했다.
타구 속도가 떨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이대호의 경우 에이징 커브(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며 기량 하락으로 이어지는 현상)를 의심할 수 있다. 불혹을 앞둔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전성기처럼 강하게 공을 때리기 쉽지 않다. 타구가 빠르면 상대 수비를 뚫어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개인 성적이 악화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18.9도였던 이대호의 인플레이 타구 발사각도 올해 18.2도로 내려갔다. 낮은 탄도로 느리게 날아가는 타구는 주력이 빠르지 않은 이대호에게 치명적인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타격 기술로 어려움을 극복한다. 이대호는 12일 기준으로 타율 3위(0.336·473타수 159안타)을 기록했다. 전반기를 타격 1위(0.341)로 마친 뒤 후반기에도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4년 만에 '규정 타석 3할'에 도전할 정도로 기량이 녹슬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전년 대비 장타율(0.448→0.501)과 출루율(0.342→0.383)이 모두 올랐다. RC/27은 6.85로 홈런 1위 박병호(KT 위즈·6.81)보다 더 높다. RC/27은 한 타자가 아웃 카운트 27개를 모두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발생하는 추정 득점이다. 이대호는 최근 두 시즌 5점대 RC/27을 기록했지만, 은퇴를 예고한 올 시즌 수치를 크게 끌어올렸다.
눈여겨볼 부분은 안타 방향이다. 오른손 타자인 이대호는 안타의 절반 이상이 왼쪽으로 향한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120안타 중 69개(57.5%)가 좌익수 쪽에 떨어졌다. 중견수 방향은 21개로 17.5%. 그런데 올 시즌 좌익수 방향 안타가 49%로 떨어졌고, 중견수 방향이 12.1%포인트(p) 오른 29.6%로 측정됐다. A 구단 타격 코치는 "타구의 방향은 센터로 가는 게 이상적이다. (타석에서 바라봤을 때)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을 다시 그 궤적으로 보내는 건 타자가 가진 여러 타격 기술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했다.
올 시즌 이대호의 모습은 풀히터가 아닌 당겨치기와 밀어치기가 모두 가능한 스프레이 히터에 가깝다. 구종과 코스를 가리지 않고 그라운드 곳곳으로 타구를 날려 보낸다. 절묘한 배트 컨트롤로 감소한 타구 속도를 만회하고 있다. 라이언 롱 롯데 타격 코치는 이대호에 대해 "영리한 선수"라며 "상대 투수가 자신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공을 던지는지에 따라 경기 중에도 쉴새 없이 조정한다. 타석에서 상황에 맞게 조정을 하기 때문에 (이상적인 모습으로) 센터 방향 타구를 날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대호는 호세 피렐라(삼성 라이온즈·0.342) 이정후(키움 히어로즈·0.342)에 이은 타격 3위다. 타격왕을 차지한다면 2013년 이병규(당시 LG 트윈스)가 세운 역대 최고령(38세 11개월 10일)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 아울러 장효조와 양준혁이 보유한 타격왕 최다 수상자(4회)로도 이름을 남긴다.
래리 서튼 롯데 감독은 "숫자를 보면 알겠지만, 성적이 너무 좋다. 올해는 이대호에게 특별한 해다. 야구선수의 진정한 마무리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대호는 출루도 잘하고, 타율도 올릴 줄 안다. 필요할 때는 홈런과 타점도 기록하는 다재다능한 완성형 타자"라고 말했다.
이대호는 "올해는 시즌 초반부터 장타 욕심을 버렸다. 안타를 많이 치고 어떻게든 많이 살아나가려고 노력 중"이라며 "센터로 많이 치려고 하니까 방향이 많이 좋아졌던 거 같다. 운이 많이 따라주고 있다"며 몸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