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LA 다저스는 한 백업 내야수를 영입했다. 2009년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한 이 선수는 2013시즌 뒤 소속팀이 없었다. 통산 홈런이 불과 8개. 나이가 서른 살로 적지 않아 유망주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놀라운 반전을 만들어냈다. 주전 3루수로 도약한 뒤 올해까지 9년째 다저스 핫코너를 지키고 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저스틴 터너(38)다. 초청신분 자격으로 바늘구멍을 뚫어낸 터너도 대단하지만, 존재감 없던 선수를 주전으로 만든 다저스 시스템도 주목할만하다.
필자는 2020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미국 플로리다 캠프 중 딜런 코비가 탬파베이 레이스 구단의 캠프 초청 선수가 됐다는 얘길 듣고 그의 경기를 보러 갔다. 코비는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4번으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됐다. 계약이 불발돼 대학교로 향했고, 2013년 드래프트 4라운드에서 오클랜드 어슬래틱스에 재지명됐다. 201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 5승을 기록한 '경력자'로 KBO리그는 물론이고 일본 프로야구(NPB)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선발 투수로 출전 예정이던 코비는 시범 경기 하루, 이틀 전 "중간계투로 2이닝을 던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선발과 불펜 등판은 준비하는 과정이 다르지만, 초청 선수 자격인 코비는 어려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5회 불펜으로 등판한 코비는 2이닝 동안 폭투를 포함해 2실점 했다. 쓴웃음을 지으며 마운드를 내려오던 그의 모습을 보며 초청 선수의 어려움을 한 번 더 느꼈다. 야구가 멘털 스포츠라는 것도 다시금 실감했다.
MLB 스프링캠프는 팀별 60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40인 로스터 선수에 초청 선수 20여명이 더해진다. MLB가 30개 구단이라는 걸 고려하면 캠프 초청 선수는 약 600명이다. 초청 선수는 크게 구단이 육성하는 마이너리그 유망주 그룹과 새 소속팀을 구하는 베테랑 그룹으로 나뉜다.
MLB 구단은 개막에 맞춰 주축 선수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상대적으로 초청 선수는 시범경기 출전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 스케줄 변동도 잦다. 특히 초청 선수로 합류한 베테랑 선수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좁디좁은 빅리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LA 다저스 팜 디렉터 출신으로 SK 구단 미국 플로리다 캠프지 '재키 로비슨 트레이닝 콤플렉스' 책임자 크레익 캘런 사장과 초청 선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당시 캘런 사장은 "초청 선수들은 시범 경기에서 투수는 10이닝, 야수는 20타석 이상 기회를 얻기 어렵다. 캠프 기간이 끝나면 방출 통보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며 "매 경기, 한 타석을 다른 선수보다 훨씬 간절한 마음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년 캠프 초청 선수가 풀 타임 빅리거가 될 확률은 1% 미만이다. 터너처럼 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KBO리그에서도 매 시즌 종료 후 여러 선수가 방출된다. 다수의 베테랑 선수는 개인 훈련을 하며 다른 구단의 관심을 기다린다. KBO리그는 시즌이 끝나면 몇몇 방출 선수를 마무리 훈련에 합류시켜 테스트를 진행한다. 어렵게 기회를 잡은 선수들은 마치 MLB 초청 선수처럼 야구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간절함을 갖고 훈련한다.
지난해 이용규(키움 히어로즈) 올 시즌 노경은(SSG 랜더스) 김진성(LG 트윈스)처럼 방출 후 이적, 좋은 활약을 이어가는 선수는 야구의 간절함이 경기에 나타났기 때문일 거다. 혹자는 베테랑 선수 영입이 유망주 성장을 더디게 한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필자는 올바른 마인드를 가진 베테랑의 야구 대하는 자세와 풍부한 경험은 어린 선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확신한다. 대부분의 베테랑은 아마추어와 2군(마이너리그) 시절 수많은 경쟁과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이 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또다시 초청 선수로 밀려나는 베테랑이 나올 거고, 테스트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거다. 풍부한 선수 자원을 보유한 MLB에서도 매년 600명 정도 초청 선수가 나온다. 각 구단이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으로 초청 선수를 활용한다. 이는 선수 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KBO리그에서 전력을 보강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유망주를 발굴하는 시스템도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구단에서 포기했어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베테랑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구단은 터너 같은 흙 속의 진주를 찾길 원한다. 야구에 대한 간절함으로 재무장한 베테랑들이 후회 없을 '라스트 댄스'를 보여주며 KBO리그의 질도 높여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