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엄상백(29·KT 위즈)의 야구 인생에 터닝 포인트다. 좀처럼 잠재력을 발산하지 못했던 그가 비로소 1군 선발 투수로 거듭났다. 한 단계 더 올라설 수 있는 교훈까지 얻었다.
엄상백은 올 시즌 KT의 히트 상품이다. 지난해 통합 우승을 이끈 선발진이 건재한 상황에서 스윙맨으로 개막을 맞았지만,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의 부상으로 선발 한 자리를 메운 뒤 기대를 웃도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후반기 개막 직후에는 컨디션 난조를 보인 배제성의 자리를 대신했다. 5월 18일 LG 트윈스전 이후 출전한 24경기에서 패전 없이 8승을 추가하며 데뷔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11승)를 거뒀고, 승률 0.846를 기록하며 이 부문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이강철 KT 감독은 정규시즌 막판 "체인지업을 마음대로 구사하게 되면서, 경기 운영 능력이 노련해졌다. 지금 우리 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라고 엄상백을 칭찬했다. 주전 포수 장성우도 "이전에는 공만 던지면 전광판 구속을 보던 투수다. 지금은 제구와 다양한 구종을 던지며 한 단계 성장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런 믿음은 가을야구까지 이어졌다. 이강철 감독은 5선발이었던 엄상백을 키움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PO) 1차전에 내세웠다. 우천 순연 일정을 소화한 탓에, 선발진 운영에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엄상백을 이번 포스트시즌(PS)에서 선발로 쓸 계획이었다고.
승승장구하던 엄상백은 자신의 첫 PS 등판이었던 16일 준PO 1차전에서 부진했다. 5와 3분의 2이닝 동안 8피안타 4실점을 기록했다. 1~3회 모두 1점씩 내줬고, 6회도 김태진과 이지영, 하위 타선 타자들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뒤 송성문에게 희생플라이까지 허용했다. KT가 8회 초 공격에서 4-4 동점을 만들며 패전은 모면했지만,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투구였다.
엄상백은 "다른 투수들은 PS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정규시즌보다 더 잘 던지던데, 나는 큰 차이가 없었다. PS 첫 등판은 의미가 있었지만, '나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고 돌아봤다. 올 시즌 새 무기로 갈고 닦은 체인지업이 유독 많이 공략당한 점을 돌아보며 "상대 타자들의 대처가 (PS에서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라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단기전 부진을 통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몸 관리의 중요성이다. 앞서 언급대로, 엄상백은 멘털이 아닌 만신창이가 된 피지컬 탓에 고전했다. 그는 "사실 패전이 없었기 때문에 가려졌지만, 9~10월 투구는 확실히 이전 두 달(7~8월)과 비교해 만족스러운 투구를 하지 못했다. 시즌 막판에는 체력 관리가 필요할 것 같아서 웨이트 트레이닝 강도를 줄였는데, 오히려 몸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변명으로 들릴까 봐 말을 아꼈지만, 준PO 1차전도 몸이 무거웠다고 한다. 정규시즌 막판과 PS를 치르기 위해선 더 강한 경기 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경험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 정립하는 수밖에 없다. 시행착오는 필연이다. 단기간에 깨우칠 수 없다는 얘기다.
엄상백은 군 복무(상무야구단) 기간 데뷔 뒤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소화했다. 파워가 생긴 덕분에 1군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가을까지 야구를 할 수 있는만큼 강한 경기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엄상백은 "시즌 막판 웨이트 트레이닝의 횟수, 강도, 휴식 정도를 관리하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나에게 딱 맞는 훈련 방법을 찾아서, 더 많은 경기를 좋은 몸 상태로 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각오를 전했다. 비록 가을야구 첫 등판에서 승률왕 자존심을 구겼지만, 이 경험은 내년 이맘때를 위한 자양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