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열린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이용규가 1회 이정후 적시타 때 홈을 파고들고 있다. 김민규 기자 베테랑 외야수 이용규(37·키움 히어로즈)가 주연이 아닌 '조연'을 자처했다.
이용규는 KT 위즈와 준플레이오프(준PO) 5경기에 모두 출전, 타율 0.364(11타수 4안타)를 기록했다. 2번 타순에 배치돼 중심 타선에 찬스를 연결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출루하지 못하더라도 특유의 콘택트 능력을 앞세워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1번 타자 김준완과 함께 투구 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경험이 있다. 경기 흐름을 읽을 줄 안다"고 말한 홍원기 키움 감독의 기대대로였다.
이용규의 올 시즌은 '악몽'에 가까웠다. 86경기 출전해 타율이 0.199(271타수 54안타)에 머물렀다. 출루율(0.326)과 장타율(0.221)도 모두 바닥을 찍었다. 5월 12일에는 견갑골 미세 골절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 40일 넘게 전열에서 이탈했다. 6월 말 복귀한 뒤에도 타격감이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7월과 8월 월간 타율이 각각 0.218, 0.167로 낮았다. 9월에도 13경기 타율이 0.207에 그쳤다.
하지만 감독의 신뢰는 꾸준했다. 이용규가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도 홍원기 감독은 주장을 교체하지 않았다. 홍 감독은 준PO를 앞두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표를 누구에게 주겠냐'는 질문에 "이용규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키움은 타격 5관왕 이정후와 투수 2관왕 안우진의 'MVP 집안싸움'이 치열하다. 정규시즌 타율이 2할도 되지 않는 이용규를 언급한다는 거 자체가 의외일 수 있었다.
홍원기 감독은 "8월 위기 때 이용규가 (선수단의) 중심을 잡아준 게 컸다고 생각한다"며 "성적은 좋지 않지만, (이용규가) 더그아웃이나 클럽하우스에서 리더 역할을 해줬다. 덕분에 팀이 많이 흔들리지 않았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7월까지 리그 2위였던 키움은 8월 한 달 동안 9승 15패에 그쳤다. 후반기 시작부터 팀이 휘청거렸지만 슬기롭게 위기를 넘겼다. 이용규의 역할이 컸다는 게 감독의 판단이다.
지난 19일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안타로 출루한 이용규(왼쪽)의 모습. 김민규 기자 이용규는 2004년 1군에 데뷔한 팀 최고참이다. 30대 중후반의 적지 않은 나이.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닌 전성기의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건 선수다. 이용규는 준PO를 앞두고 "어릴 때부터 내 역할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었다. 진짜 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히어로가 탄생하는 과정에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이용규는 KT와 준PO 4차전에서 시리즈 네 번째 희생번트로 단일시즌 준PO 희생타 타이기록을 세웠다. 남다른 작전 수행 능력은 키움 타선에 불을 붙이는 시발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히어로'는 시리즈 MVP 안우진, 5차전 결승 홈런 주인공 송성문, 중심 타자 이정후의 차지였다. 그러나 '히어로'를 빛나게 만든 건 승리의 주춧돌을 쌓은 이용규였다.
이용규에게 24일 시작하는 LG 트윈스와 플레이오프(PO·5전 3승제) 시리즈가 남다르다. KIA 타이거즈 소속이던 2009년 이후 무려 13년 만에 한국시리즈(KS) 진출을 노린다. 조연을 자처한 그의 활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