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는 3회에 걸쳐 대한민국 여성들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입시 준비에 짓눌린 10대 여학생들, 출산 후 영유아를 키우느라 자기 시간을 내기 힘든 여성들, 그리고 부쩍 건강이 나빠져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노년층 여성은 특히나 운동의 사각지대에 있다. 어려운 환경과 선입견을 극복하고 땀 흘리고 즐기는 여성들로부터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간다, 간다, 간다.” “굿~샷!”
경기도 포천에 위치한 포천체육공원 게이트볼장. 신읍클럽의 이명희(68)씨가 골폴을 맞추자 팀원들이 엄지를 치켜들며 응원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령의 여성 게이트볼 회원들은 한 손에 길이 1m가량의 스틱을 쥔 채 끊임없이 움직였다. 쉬엄쉬엄 공을 칠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 철저하게 계산된 작전이 있고, 나름 치밀하기까지 했다.
게이트볼은 T자형 스틱으로 볼을 쳐서 경기장 내 세 곳의 게이트를 차례로 통과시킨 다음 골폴에 맞히는 구기 종목이다. 다섯 명씩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펼친다. 경기 시간은 30분. 각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1점씩 득점하고, 골폴을 맞추면 추가로 2점이 더해진다. 점수가 많은 팀이 이기며, 한 팀이 최고로 득점할 수 있는 점수는 선수당 5점씩 총 25점이다.
포천시의원 출신인 이명희씨는 “게이트볼을 시작한 지 5개월 정도 됐다. 여기서 막내”라며 웃은 뒤 “원래 골프가 취미였는데, 어깨와 다리 수술을 한 뒤 게이트볼을 시작했다. 계속 걸어 다녀 활동하기에도 좋고, 두뇌까지 사용해야 하니 노후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운동이다. 함께 어울려 하다 보니 협동심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포천시에는 총 36개 분회(클럽)가 활동하고 있으며, 여기에 속한 회원수는 400여 명이다. 실내 25개 구장, 실외 7개 구장도 보유하고 있다. 1년 참가 회비는 4만 2000원. 이경순(67)씨는 “스틱만 사면 된다. 비용 부담이 크게 없는 생활체육”이라고 했다. 이명희씨는 “골프는 비용 부담이 컸는데, 게이트볼은 적은 회비만 내면 된다. 스틱도 대여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고령의 여성 회원들이 생활체육에 참여하는 데에는 주변인의 영향력이 컸다. 건강한 노후 생활을 보내기 위해 동반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윤순(83)씨도 “복지관 사람들과 함께 게이트볼을 시작했는데, 10년 이상 하다 보니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며 웃었다. 지안숙(75)씨도 “산책하다가 잠시 구경했는데, ‘한 번 해보라’고 해 친구 3명이 같이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게이트볼을 통해 생활체육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김순이(82)씨는 “과거에 가사와 농사일을 하느라 생활체육에 참여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는 자식들이 다 커서 출가했다. 게이트볼을 하기 위해 전국을 다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가는지 모른다”며 웃었다. 이윤순씨는 “예전에 여자들은 운동을 안 하는지 알았다. 세월이 바뀌었다. 이제 여자들도 운동하는 시대”라고 했다.
고령의 여성들이 생활체육에 활발히 참여한다는 건 통계적으로 입증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1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생활체육 참여율은 61.4%로 60.1%를 기록한 남성보다 높았다. 연령별로는 60대와 70세 이상의 참여율 증가가 두드러졌다. ‘주 2회 이상 운동한다’라는 응답에 60대의 생활체육 참여율은 전년도 55.1%에서 57.9%로, 70대의 참여율은 전년도 50.4%에서 53.4%로 증가했다.
게이트볼을 하면서 지역주민과의 소통도 증가했다. 이경순씨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여가를 보내는 데 게이트볼이 최고다. 게이트볼이 고령만 하는 생활체육은 아니다. 3세대가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최근에 남편도 게이트볼에 빠지게 했다”며 활짝 웃었다. 김선환(71)씨는 “최근 50대 이하의 회원들을 모집하면서 게이트볼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게이트볼 회원들은 꾸준히 운동에 참여하다 보니 건강 상태에 대한 욕구가 더 커졌다. 김순이씨는 “게이트볼을 하기 이전에는 많이 아팠는데, 게이트볼을 하면서 많이 걷다 보니 너무 건강해졌다. 몸이 안 될 때까지 할 것”이라고 엄지를 올렸다. 김선환씨도 “우울증이 없어졌고,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욱신거려도 게이트볼장만 오면 허리가 펴진다”며 깔깔 웃었다.
오전에 농사일을 마친 후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2~3시간 동안 게이트볼을 한다는 지안숙씨도 “요새는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나. 70~80세면 아직 청춘이다. 게이트볼 하면서 많이 걷고, 머리도 쓰면서 너무 건강해졌다. 정말 좋은 스포츠”라고 했다. 이명희씨도 “혼자 있으면 우울할 텐데, 다 같이 운동하니 좋다. 만보기를 차고 하면 6000보 이상은 걷더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