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과 함께 H조에 속해 있다. 포르투갈은 2022년 10월 기준으로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9위에 올라있는 강호다. 한국이 16강에 진출하기 위해서나 브라질을 피해 8강까지 노린다면 포르투갈과의 경기 결과가 중요하다.
포르투갈은 에우제비오, 루이스 피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과 같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를 배출한 나라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북한은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3-0으로 앞서다, 에우제비오에게 4골을 헌납하고 5-3으로 역전패했다.
하지만 한국은 20년 전인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만나 1-0으로 이긴 기분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한국전에서 풀 타임 경기를 뛴 파울루 벤투가 현재 한국대표팀의 감독이다. 벤투외에도 현 대표팀에는 포르투갈 출신 코치가 4명 포진해 있다.
2002 월드컵 당시 박지성과 포르투갈 선수들이 공을 다투고 있다. 왼쪽 17번을 단 포르투갈 선수가 파울루 벤투다. [연합뉴스 ]
2002 월드컵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의 후임으로 한국대표팀을 맡은 움베르투 코엘류도 포르투갈 출신이었다. 이외에도 전북 현대의 감독으로 K리그 2연패와 FA컵 우승을 이끈 조제 모라이스도 포르투갈인이다. 이렇듯 21세기 들어 한국과 포르투갈은 축구 분야에서 교류가 제법 많았다.
축구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한국과 포르투갈의 교류는 사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비록 간접적이지만 역사적으로 한국과 포르투갈의 관계는 악연으로 시작됐다. 그에 반해 포르투갈의 국민성은 의외로 한국인과 유사한 점이 꽤 많다고 한다. 20년 만에 우리는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을 다시 만났다. 한국과 포르투갈은 어떤 인연을 갖고 있을까?
발전된 항해술을 기반으로 유럽인들은 15세기 들어 세계 곳곳을 탐험했다. 이들은 아메리카대륙으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고,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 동아시아 등으로 진출하는 등 세계를 일주했다. 17세기까지 이어진 이 시기를 대항해시대(Age of Discovery)라고 부른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필두로 한 이 탐험에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가세했고, 각 대륙과 문명이 연결되기 시작한다. 명실상부한 글로벌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북유럽의 바이킹이 해적질을 일정한 지역에 한정적으로 한 것에 비해, 포르투갈은 세계 해적 역사의 원조다. 유럽 서쪽 구석에 위치한 포르투갈은 땅이 좁고 농지는 척박했다. 그러나 당시 포르투갈 국력으로는 육로를 통해 해외에 진출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생존을 위해 대서양과 아프리카에 진출했다. 이들은 희망봉을 발견했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다.
교역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조선에 처음 발을 디딘 서양인도 포르투갈인으로 추측된다. 네덜란드의 하멜보다 70여년 앞서 이들이 조선에 도착한 기록이 선조수정실록과 영국 문헌에 남아있다.
한편 포르투갈 탐험대는 표류 끝에 1543년 일본에 도착한다. 이들이 일본에 판 것이 바로 서양의 근대적인 장총이었다. 현재 가격 20억 원에 해당하는 은을 주고 2정의 총을 구입한 일본은 역공학(reverse engineering, 상품을 분해하여 생산 방식을 알아내는 것)에 돌입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일본은 총을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조총이 개발된 것이다. 조선도 이 시기에 총을 만들 기회가 있었으나, 지도자들의 무관심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날렸다. 결국 16만 명의 조총수를 앞세워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당시 일본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용병까지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포르투갈 영토인 마카오를 통해 건너왔다고 한다.
포르투갈과 무역을 오래 한 일본은 이들의 언어를 외래어로 많이 받아들였고, 이 중에 상당수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반도로 전파됐다. 대표적인 예로 식품류로는 빵(Pao), 자몽(Jamboa), 담배(Tabaco), 카스텔라(Castella), 소보로(Soboro) 등이 있다. 튀김 요리를 일컫는 덴뿌라와 샐러드를 의미하는 사라다도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 이외에 소매가 없는 옷인 조끼와 속옷인 메리야스도 포르투갈어가 기원이다.
포르투갈의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상반된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은 대항해 시절 미지의 땅을 개척해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이들은 역사에서 가해자보다 피해자로서 훨씬 오랜 시간을 보냈다. 기원전부터 포르투갈은 로마제국의 지배를 400여년 받았다. 로마의 철수 이후 게르만족이 이들을 공격했다. 8세기 들어서 포르투갈은 무어인(Moors,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이슬람교도)에게 지배당했고, 다시 기독교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500년 이상이 걸렸다.
내실이 단단하지 않았던 작은 나라 포르투갈은 식민지 전쟁에서도 다른 유럽 열강들에게 밀리게 된다. 1580년부터 60년간 스페인의 지배를 당하기도 했던 포르투갈은 국력이 계속 약해졌다. 19세기 들어서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포르투갈을 침략했다. 이들의 최대 식민지였던 브라질도 독립했다. 이후 내전을 겪은 포르투갈은 1926년 군사 쿠테타가 발생해 독재정권이 1974년까지 존재했다.
수많은 외침과 독재 정권 등 여러 면에서 포르투갈은 한국과도 닮은 점이 많다. 포르투갈의 민중음악인 파두(Fado)가 이들이 겪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보여준다. 파두의 어원은 숙명을 의미하는 라틴어 파툼(Fatum, 로마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신)에서 유래했다.
파두는 기약 없는 그리움을 담은 노래로 한국인의 정서 한(恨)과 일맥상통한다. 대항해 시절 미지의 땅을 찾아 떠난 남편, 연인과 아들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절망과 한숨을 담은 노래 파두. 그리고 한민족의 얼과 한을 담은 아리랑. 슬프고 한스러운 역사를 가진 한국과 포르투갈의 공통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