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6개 팀(한국,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카타르)이 출전했다. AFC 6개 팀 이상이 월드컵에 동시 출전한 건 역대 최초다. 유럽축구연맹(UEFA)에선 13개 팀, 남미축구연맹(CONMEBOL)에서는 4개 팀이 월드컵 본선에 나선다. 아시아 국가가 유럽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이다.
아시아는 월드컵에서 ‘변방’ 취급을 받아왔다. 아시아 팀들이 월드컵 역사에서 발자취를 남긴 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4강에 오른 한국이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기록이다. 이마저도 홈에서 열린 월드컵이다. 원정 월드컵으로 한정하면 1966 이탈리아 대회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른 것이 아시아 국가가 월드컵에서 세운 최고 성적이다.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전통의 ‘월드컵 단골’이다. 한국은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부터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1954 스위스 월드컵까지 포함하면 통산 11번 월드컵 본선에 나섰다. 일본은 1988 프랑스 대회부터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양국은 동북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축구 강국’임을 서로 주장한다.
아시아 축구 정상을 놓고 오랜 라이벌 관계를 쌓은 한국과 일본은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나란히 쉽지 않은 조에 편성됐다. FIFA 랭킹 28위 한국은 포르투갈(9위) 우루과이(14위) 가나(61위)와 같은 H조다. 24위로 E조인 일본은 ‘최악의 조’로 꼽힌다. 스페인(7위) 독일(11위) 코스타리카(31위)와 같은 조다. 한국과 일본은 난관에 동시에 봉착한 만큼, 장외 경쟁을 펼친다.
일본은 16강 진출에 자신감이 있다. 지난 2018 러시아 대회 때 일본은 폴란드, 콜롬비아, 세네갈과 같은 조에 편성돼 최약체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승 1무 1패를 기록,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바 있다.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초반 3경기에서 1승 2패로 탈락 위기까지 몰렸던 일본은 이후 7경기에서 8승 2패를 기록해 극적 본선행을 확정해 분위기도 좋다.
월드컵 무대에서 일본이 복병이 될 수도 있다. 쿠보 다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도미야스 다케히로(아스널) 미나미노 타쿠미(AS모나코) 등 해외파가 즐비하다. 최종 엔트리 26명 중 해외파만 20명이다. 일본대표팀 주장 요시다 마야(샬케04)도 “(러시아 대회 때) 한국이 독일을 꺾어 (독일이) 무적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8강 진출이 목표”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시아 축구 전문 기자인 요시자키 에이지는 일간스포츠를 통해 “일본 축구 팬들은 오히려 강팀들과 월드컵에서 만난다는 것에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강한 압박과 빌드업 축구를 지향하지만, 상황에 따라 수비라인을 내리고 역습을 하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독일과 첫 경기 후에 만나는 코스타리카와의 2차전이 16강 진출의 분수령”이라고 짚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당시 원정 16강을 달성했던 한국은 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대회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냈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역대 가장 순조로운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빌드업 축구’와 ‘짠물 수비’가 월드컵에서도 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와 수비수가 한국 대표팀에 있다는 게 강점이다.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득점왕(23골)을 차지한 손흥민(토트넘)은 안와골절 부상을 당했으나, 빠른 회복세를 보인다. 이탈리아 세리에A 나폴리에서 리그 정상급 수비수로 뛰는 김민재는 빅클럽이 주목하는 한국 수비의 중심이다. ‘손·김 듀오’는 외신이 꼽는 한국의 경계 대상 1호다.
에이지 기자는 “한국과 일본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같은 조는 아니지만, 장외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 좋은 현상”이라며 “1998 프랑스 대회 이후 두 나라의 월드컵 본선 성적은 대개 비슷했다. 준비과정에선 일본이 잘했는데, 한국이 본선에서는 더 잘한다.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잘했다. 본선에서도 기대가 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