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빈(23·두산 베어스)은 올 시즌 팀 선발진의 기둥 중 하나였다. 27경기에 등판해 8승 9패 평균자책점 3.78을 기록했고, 147과 3분의 2이닝을 던져 데뷔 후 처음으로 규정이닝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에는 부상에서 복귀한 후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올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감을 찾고 잠재력을 터뜨렸다. 마지막 경기에서 5실점(10월 7일 삼성 라이온즈전)으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8월 7일 KIA 타이거즈전부터 10월 1일 삼성전까지 9경기에서는 KBO리그를 압도했다. 이 기간 평균자책점이 2.48로 리그에서 가장 낮았다.
제구력이 괄목상대했다. 그는 지난해 9이닝당 볼넷 7.21개를 기록했다. 규정이닝 50% 이상 던진 투수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올해는 지난해의 절반에 가까운 3.66개를 기록했다. 후반기로 한정하면 2.04개로 더 줄었다.
곽빈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팔 각도가 달라졌다. 지난해 포크볼과 커브를 효과적으로 구사하기 위해 팔 각도를 올려서 던졌는데, 잘 맞지 않았다. 올해는 편하게 던져보자 생각하고 팔을 내려봤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제구력이 향상됐다. 변화구뿐만 아니라 직구조차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던 지난해와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곽빈은 "원래 변화구를 던지는 감각은 조금 있는 편이었다. 몇 번 던져보고 피드백을 받아 조정하면 새 구종을 금방 익히곤 했다"며 "직구가 아무리 빨라도 이닝을 길게 던지려면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아야 한다. 최대한 직구와 비슷한 폼으로 던져 타자의 방망이를 이끌고자 했다. 변화구 스트라이크가 늘어나니 자신감이 생겨서 제구도 좋아진 듯하다"고 전했다.
동갑내기 절친들의 존재도 곽빈에게 큰 도움이 됐다. 올 시즌 신인왕이자 입단 동기인 정철원과는 서로 '최고의 투수'라며 치켜세우는 사이다. 곽빈은 “(정)철원이처럼 잘하는 투수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며 “첫 시즌인데도 많이 던졌다. 이럴 때 잘 관리해야 한다. 철원이는 부상만 없다면 앞으로 더 발전할 선수다. 철원이가 우리 팀에서 오래 던져줘야 팀도 좋고 (뒷문이 든든하면) 나도 좋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은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성장했다. 안우진은 올 시즌 평균자책점(2.11)과 탈삼진(224개) 2관왕에 오른 뒤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곽빈은 “(안)우진이와는 비시즌에도 자주 연락한다. 내가 투수를 고등학교 때 다시 시작했는데, 우진이가 그때 정말 많이 도와줬다”고 돌아봤다.
그는 “항상 '우진이를 따라가자'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우리 나이에 골든글러브를 받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친구가 받으니 더 뿌듯하다. 나도 (타이틀을 따서) 우진이와 함께 시상식을 다니는 선수가 되고 싶다"며 "이전까지는 우진이보다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올 시즌을 보내 보니 나도 우진이처럼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나도 골든글러브를 받을 수 있는 투수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곽빈은 내년 3월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관심 명단에도 포함됐다. 구위만 놓고 보면 후보 중 으뜸이다. 하지만 곽빈은 국가대표에 승선하는 걸 넘어 더 안정감 있는 투수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뽑아주신다면 당연히 가고 싶다.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아직 내가 나라를 대표할 수준의 투수는 아닌 것 같다. 1년 동안 꾸준히 잘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만 보여드린 정도"라며 "내가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에서는 팬분들께서 '(곽)빈이 나왔네. 오늘은 이기겠다'고 얘기하실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