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김기중(48) 신임 감독이 닷새 만에 자진 사퇴했다. 흥국생명 구단은 뒤늦게 '경기 운영 개입'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흥국생명은 "김기중 감독이 심사숙고 끝에 감독직을 최종 고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어 "김 감독의 뜻을 존중해 당분간 김대경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를 예정이다. 감독 선임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밝혔다.
지난 2일 권순찬 감독 경질 후 김기중 감독을 소방수로 투입하려 한 흥국생명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최근 열흘 사이 두 명의 감독이 물러나고, 감독 대행 두 명이 긴급 투입되는 등 팀이 크게 표류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권 감독 경질 나흘 뒤인 지난 6일 김기중 선명여고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구단은 "현장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지도력을 겸비한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성균관대-삼성화재 출신의 김기중 감독은 은퇴 후 여러 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다가 2018년부터 흥국생명 수석코치를 역임한 바 있다. 팀 사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그는 "지난 4년간 흥국생명에서 선수들과 동고동락했다. 흥국생명에 돌아와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보답하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출사표를 냈다.
하지만 김기중 감독은 사령탑에 선임된 후 첫 경기였던 지난 8일 IBK기업은행과의 원정경기에서 감독석을 비웠다. 구단은 "감독 선임 업무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내놓았다. 이날 감독 대행을 맡은 김대경 코치는 "신임 감독과 선수단 상견례도 없었다"고 밝혔다.
김기중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다는 발표가 나오자, 김연경 등 흥국생명 선수들이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기중 감독도 크게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사퇴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임형준 구단주가 10일 직접 김기중 감독을 만나 사퇴를 만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김 감독의 뜻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배구계 안팎에서 신뢰받아도 어려운 자리가 감독직이다.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현 상황이 부담이다. 선수단과 배구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며 고사 사유를 전했다.
흥국생명은 뒤늦게 '윗선 개입'에 대해 사과했다. 앞서 신용준 신임 단장은 "선수 기용이 아닌 경기 운영과 관련해 감독과 (김여일) 단장의 이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반면 선수단은 "윗선의 선수 기용 개입이 있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선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연경은 "과연 이런 팀이 또 있을까 싶다. 최근 흥국생명에서 발생하는 일이 너무 부끄럽다"며 "우리가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나"라며 안타까워했다.
구단은 '경기 운영 개입 논란'이라고 표현했지만, '윗선 개입설'에 관해 처음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구단주 명의로 "최근의 사태는 배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경기 운영 개입이라는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된 것이다. 향후 경기 운영에 대한 구단의 개입을 철저히 봉쇄하고 감독의 고유 권한을 전적으로 존중할 것이다.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경기 운영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고 덧붙였다.
팀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흥국생명은 11일 선두 현대건설(승점 51)과 홈 경기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