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은 "김기중(48) 선명여고 감독이 심사숙고 끝에 (감독직을) 고사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김기중 감독은 선임 발표 닷새 만에 자진 사퇴했다.
문제는 차기 사령탑 선임이다. 흥국생명은 2022~23시즌 V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다. 이제 막 정규시즌 반환점을 돌았는데 '봄 배구'까지 고려하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정식 감독을 데려오는 것이 중요하다. 새 감독 인선 전까지는 김대경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을 예정이다. 그는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한 30대 지도자다.
흥국생명이 지난 2일 권순찬 감독을 경질했을 땐 '구단 플랜'이 있었다. 흥국생명은 2018년부터 4년간 구단 수석 코치를 역임한 김기중 선명여고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김 감독은 이영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이끈 지난 5일 홈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을 찾아 GS칼텍스전을 관전했다.
다음날 김기중 감독은 사령탑에 선임되자마자 "흥국생명에 감독으로 돌아와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며 "선수들이 마음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수단 내 반발 기류와 배구계에서 거센 만류가 이어졌다. 결국 김 감독은 부담을 느껴 스스로 물러났다.
이번 촌극이 흥국생명 감독 선임의 난맥을 보여준다. 새로 선임된 감독도 팀 훈련은커녕 선수단 상견례도 갖지 못하고 떠나는 상황이다. 흔들리는 난파선에 새로운 선장으로 올라탈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기피하는 자리가 됐다. 김기중 감독 선임 때와 달리 흥국생명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구단 관계자도 "차기 사령탑은 신중하게 모셔야 한다. 백지상태에서 다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대경 감독 대행 체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흥국생명은 '감독들의 무덤'으로 통한다. 박미희 감독의 8시즌 '장기 집권'을 제외하면 나머지 감독의 재임 기간은 평균 1년 남짓이다. 권순찬 감독도 부임 9개월만에 쫓겨났다.
흥국생명은 2005년 V리그 출범 후 여자부 7개 구단 중 가장 많은 10명의 감독을 선임했다. 이 가운데 7명이 시즌 중 사임하거나 경질됐다. 과거 경질한 감독을 다시 데려온 데 이어 한 시즌에만 무려 3명의 감독이 지휘봉을 이어받은 적도 있다. 시즌 중 정식 선임돼 72일 만에 물러난 경우도 있었다.
최근 열흘 사이 흥국생명은 권순찬 감독-이영수 감독대행-김기중 감독-김대경 감독 대행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전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흥국생명 감독직에 대한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구단 내부에서도 "새 감독을 데려오기 쉽지 않겠다"라는 걱정이 새어 나온다. 김대경 감독 대행은 "다들 마음 속으로 아픔을 간직한 채 열심히 하고 있다. 선수단이 동요하지 않고 훈련하도록 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