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47) 두산 베어스 감독은 한국 야구대표팀에서 가장 상징적인 존재다.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일본과 사상 첫 메달 결정전에서 결승 2루타를 날렸다. 이어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홈런 5개를 쳐 대회 초대 홈런왕을 수상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이승엽은 일본과 준결승전에서 결승 투런포, 결승전에서 선제 투런포를 쳐 첫 야구 금메달을 대표팀에 안겼다. 연이은 국제대회 활약에 그의 별명은 '국민 타자'를 넘어 '합법적 병역 브로커'가 됐다. 그의 활약에 수많은 동료가 예술체육요원 대체복무 자격을 따냈기 때문이다.
선수로는 은퇴했어도 국가대표는 여전히 이승엽과 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지난 16일 열린 두산 창단기념식에서도 WBC가 화두에 올랐다.
이승엽 감독은 "대표팀에 승선한 선수들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제대회 활약이 재능 있는 유망주들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였던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떠올리는 첫 국제대회도 2006년 WBC였다. 이정후뿐 아니라 안우진(키움) 강백호(KT 위즈) 등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선수들 다수가 WBC를 보며 꿈을 키웠고,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로 성장했다.
이승엽 감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본 '베이징 키즈'들이 지금 프로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다. 국제대회 영향력이 그 정도로 크다”며 “지금 야구를 하는 어린 친구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대표팀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고 뛰어줬으면 한다. WBC 성적이 한국야구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생각이어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대표팀 선배'인 동시에 두산의 신임 감독이다. 두산에서는 양의지·곽빈·정철원이 이번 대표팀에 승선했다. 소속 선수들과 두산 캠프에서 호흡을 맞출 시간이 짧아져 아쉬울 터. 그래도 이승엽 감독은 "더 많이 뽑히지 못해 실망감도 있다"며 웃었다.
이승엽 감독은 “곽빈과 정철원이 (대표팀 출전을 위해) 페이스를 보다 빨리 올리게 돼 걱정은 된다"면서도 "(베테랑 포수인) 양의지가 함께 가니 안심"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한국 야구를 대표해서 가는 만큼 소속 팀 생각은 잠시 미루자. 그들이 정말 팔이 빠지도록 던져서 승리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웃으면서 돌아오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승엽 감독은 ‘2008년 이승엽’이 재현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두 차례 올림픽에서 모두 대회 초반 부진했다. 두 대회 모두 OPS(출루율+장타율)가 0.7을 넘기지 못했다. 대회 막판에야 해결사로 나섰다. 결과는 '해피 엔딩'이어도 당사자의 부담감이 컸다. 그는 "초반에 못 하면 된다"고 웃었다.
이승엽 감독은 "난 매번 초반에 부진하다가 마지막에야 임팩트를 남겼다. 물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났다. 그래도 그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며 "이번 WBC에서는 선수들이 임팩트를 남기기보다 잔잔하게 (오래) 해주면 좋겠다. 국민들께서 재미없다고 하실 수도 있지만,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선수들이 나오면 좋겠다. (선수들이) 잘해줄 것"이라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