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움 그 자체다. ‘콩쥐 팥쥐’(1977) 이후 약 45년 만에 탄생한 한국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이 수작업으로 빚어낸 경이로운 풍경과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메시지를 담고 극장가 공략에 나섰다.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설원의 소녀 그리샤가 아픈 엄마를 구하기 위해 전설의 붉은 곰을 찾아 떠나는 과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다. 70분이 채 안 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소요된 시간만 약 3년 3개월. 이 작품은 국내 영화계 스톱모션 장르의 명맥을 잇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서 스톱모션 장편 애니메이션이 탄생한 건 ‘콩쥐 팥쥐’ 이후 근 반세기 만이다.
공이 많이 들어간다고 알려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답게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역시 긴 작업 과정이 걸렸다. 제작진은 CG 작업을 최소화하기 위해 10개의 세트를 모두 수작업으로 만들었는데, 그 덕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날로그한 질감이 화면 전반에서 잘 느껴진다. 한 장면을 촬영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평균 8시간. 그만큼 모든 장면에 정성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아야만 하는 스톱모션 장르로 장편 데뷔작을 발표한 박재범 감독은 그야말로 장인 정신을 발휘했다. 수작업으로 직접 표현해낸 오로라와 눈보라, 광활한 설원, 신비로운 숲 등은 지금까지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것과 다른 아름다움과 영상미를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자연과 공존이란 메시지 역시 또렷하다. 전 세계가 기후 위기로 신음하고 있는 시기,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자연으로부터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가져온 만큼 되돌려 주자’는 공생의 메시지로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든다. 주인공 소녀 그리샤가 동생 꼴랴, 반려 순록 세르데토와 전설 속 숲의 주인을 만나러 가는 과정은 해외 메이저 애니메이션 못지않은 볼거리와 즐거움을 안긴다.
영화 속 아름다운 풍경은 툰드라에서 힌트를 얻었다. 툰드라 유목민의 생활상과 전통문화, 태초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 자연을 온전히 스크린에 담고 싶었던 박재범 감독은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를 연출한 장경수 CP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고, 국내외 관련 서적과 다큐멘터리를 탐독하며 자신만의 툰드라를 설계했다. 툰드라 지대를 대표하는 설산, 촉촉한 이끼 융단이 깔린 동굴, 밤하늘에 걸린 오로라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다.
박 감독은 또 극지방의 눈보라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풍향과 풍속, 사람의 이동 방향, 밤과 낮 등 무수한 경우의 수를 헤아려 촬영했다. 영화의 중요한 메타포이자 가장 큰 과제였던 오색의 오로라는 시장을 뒤져 구해온 온갖 종류의 천들을 다양한 조명과 앵글에서 고속 촬영하고, 그 소스들을 합성해 완성했다. 침엽수가 빽빽한 북쪽의 숲은 편백숲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를 활용해 리얼함을 더했다.
마치 툰드라를 고스란히 담아낸 듯한 실감나는 풍경과 조화와 공생이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25일 개봉한다. 전체 관람가. 6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