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가 2023년 신년 시리즈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합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김태균 해설위원이 연구한 야구, 특히 타격에 대한 이론·시각을 공유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독자들이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찰리 로는 테드 윌리엄스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을 주장하며 윌리엄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로는 엉덩이 회전보다 체중 이동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50년 논쟁…뒷발 타격 vs 앞발 타격
윌리엄스가 강조하는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은 히팅 포인트가 축발(오른손 타자의 오른발)에 가깝다는 뜻으로 ‘뒷발 타격’이라고 불렀다. 로는 이 타격을 저격하며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엉덩이를 크게 돌리면 바깥쪽 공에 대응하기 어렵고 ▶당겨 치면 삼진과 땅볼이 나올 가능성이 크며 ▶타자들이 홈런을 친 순간을 보면 뒷발에 힘이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로는 윌리엄스와 정반대의 이론을 주장했다. 메이저리그(MLB)의 위대한 타자를 비디오로 분석한 결과, 타격 순간 앞발에 체중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베이브 루스(통산 714홈런)를 넘어선 행크 애런(통산 755홈런)이 그런 것처럼 콘택트 순간 뒷발이 지면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즉 앞발에 체중이 실려야 하고, 뒷발에서 앞발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게 좋은 타격을 하는 비결이라는 게 로의 이론이다.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은 1970년대 로가 타격 코치로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주목 받았다. 이는 곧 윌리엄스 타격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하체 움직임을 통해 파워를 쓰는 방법뿐 아니라 배트를 쥔 손을 쓰는 방법에서도 이견을 보였다.
두 타격 이론은 50년 동안 맞붙었다. 그래서 결론이 나왔을까? 아니다.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과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은 각자의 해답이었을 뿐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엉덩이 회전력만을 이용해 타격하는 타자는 없다. 마찬가지로 체중 이동을 통한 추진력으로만 칠 수도 없다. 극단의 주장 사이에서 타자들은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길을 찾아야 한다.
두 타격 이론에서 난 어떤 유형의 타자였을까? 대부분은 내가 로테이셔널 히팅을 했다고 말할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 타격이 윌리엄스의 이론과 비슷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뒷발 타격’만 한 건 아니다. 타구에 힘을 싣기 위해 직선 운동(체중 이동)과 회전 운동(엉덩이 회전)이 다 필요하다. 나는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을 ‘상대적으로’ 더 활용했을 뿐이다. 그러다 근력이 떨어진 30대 중반에는 체중 이동을 통해 에너지를 얻으려 했다. 즉 한 타자의 스윙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내가 ‘뒷발 타격’을 하려고 해도 투구가 내 마음대로 오는 게 아니다. 패스트볼 타이밍에 맞춰 힙턴을 하는데 변화구가 날아들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나는 뒷발에 집중돼 있던 무게중심을 앞발로 옮겼다. 오른 무릎으로 내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제때 회전력을 살리지 못한 걸 추진력으로 만회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도 난 ‘뒷발 타자’일까? 아니다.
다른 사례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MLB에서도 거포로 성장한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일본)의 타격을 유심히 봤다. 그의 메커니즘은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에 가깝다. 왼손 타자인 그는 로딩 때 앞발(오른발)을 지면에서 떼지 않는다. 오른발 뒤꿈치를 살짝 들었다가 놓으면서 강한 엉덩이 회전을 이용해 에너지를 폭발한다.
메이저리그(MLB)의 마지막 4할 타자(1941년 타율 0.406)로 유명한 테드 윌리엄스의 타격 장면. 그는 엉덩이 회전을 이용해 만든 에너지를 배트에 전달하는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을 강조했다. MLB에서 19시즌을 뛴 그는 통산 타율 5위(0.344) 홈런 20위(521개) 출루율 1위(0.482)를 기록했다. 통산 OPS(출루율+장타율)는 1.116로 베이브 루스(1.164)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윌리엄스는 타격 기술도 뛰어났지만, 영리한 전략과 정확한 선구안으로도 유명했다. 윌리엄스는 명저 『타격의 과학』을 통해 "타격의 절반은 머리로 한다"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2인치 빠지는 공을 건드리면 투수의 존을 35%나 넓혀주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그가 2021~2022년 홈런 80개를 터뜨린 장면을 몰아보기 해보자. 히팅 포인트만 비교해도 절대 똑같지 않다. 임팩트가 뒷발에 이뤄지는 건 과장된 표현이다. 보통 타자 배꼽 앞에서 콘택트를 하면 포인트가 뒤에 있다고 한다. 오타니가 때린 홈런의 히팅 포인트는 다 다르다. 배꼽부터 앞발까지 40~50㎝에 이르는 구간에 넓게 퍼져있다. 엉덩이 회전으로 만드는 힘과 체중 이동으로 얻는 힘을 모두 쓰는 것이다. 다만 비중이 다를 뿐이다.
이승엽 선배는 1990년대부터 ‘외다리 타법’으로 유명했다. 앞발을 높이 들었다가 내디디며 힘을 폭발했다. 체중 이동을 중시했으니 이승엽 선배는 로의 이론대로 친 걸까? 아니다. 힘을 모으는 과정은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이지만, 임팩트 순간에는 어느새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타격 후 이승엽 선배의 몸이 앞으로 쏠리지 않고 빙글 돌았던 이유였다.
답이 없다는 게 정답이다
훌륭한 타자들은 대부분 직선 운동과 회전 운동을 모두 활용한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가 있다. 현대 야구에서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을 가장 잘 활용한 타자는 빅리그 통산 최다 홈런(762개) 기록자인 배리 본즈 같다. 약물 스캔들로 얼룩지긴 했으나, 강한 회전력을 만드는 그의 스윙은 MLB 역사에 손꼽힐 정도였다.
1969년 워싱턴 세네터스 감독 시절의 테드 윌리엄스(오른쪽). 왼쪽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강타자 알 칼라인이다. 그는 워싱턴(1967~1969)과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4년 동안 감독을 지내며 타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AP=연합뉴스
반대로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을 극단적으로 쓰는 타자도 있다. 크지 않은 체격으로 2020년 KBO리그에서 30홈런을 치고 MLB에 진출한 김하성은 전형적인 ‘앞발 타자’다. 그는 몸을 앞으로 전진(체중 이동)해서 모든 공을 찍어 치는 데 탁월하다. 하체 움직임도 좋지만 오른손을 쓰는 기술이 워낙 뛰어나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윌리엄스의 뒷발 타격은 파워 히터에게 더 좋다고 한다. 힘은 충분하니 히팅 포인트를 뒤에 두고 타격하면 정확도가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반대로 로의 이론은 정확성이 높은 타자가 장타력을 보강하기에 알맞다는 주장이 있다.
이 말에 나도 대체로 동의한다. 전성기 시절 내 타격 영상을 보면 뒷발(오른발)이 지면에 딱 고정돼 있다. 흔히 말하는 ‘공을 받쳐놓고 치는’ 타격이었다.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의 특징이다. 파워가 충분한 시절이니 투구를 기다렸다가 또박또박 받아친 거다.
그러나 30대 중반이 된 2016년 이후 내 타격 장면을 보면 뒷발이 앞으로 쓸려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즉 체중이 앞으로 이동하는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에 가까워진 것이다. 힘이 달리니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연구와 논쟁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윌리엄스의 말이 맞다거나, 로의 이론이 옳다는 게 아니다. 타격은 ‘종합 예술’이라는 점이다.
투수가 던진 패스트볼은 0.4초 만에 홈플레이트를 통과한다. 그 공을 둥근 배트로 쳐내는 타격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어려운 일(윌리엄스)”이다. 그래서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과학적 연구와 수없는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스윙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내 경우는 어땠을까? 내 타격은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 비중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윌리엄스 이론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윌리엄스는 하이 패스트볼을 칠 때 투구의 윗부분을 다운컷하는 느낌으로 타격하라고 했다.
내가 이해하기로 윌리엄스의 말은 ‘투구 스피드에 밀릴 때 타자는 타이밍을 빨리 잡으며 공을 내리찍어야 한다’는 조언 같다.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난 그러지 않았다. 윌리엄스가 활약한 시대와 달리 현대의 투수들은 패스트볼부터 느린 변화구의 구속 차이를 잘 이용한다.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면 변화구 대응이 어려워진다. 또 하이 패스트볼을 내려치면 왼 어깨가 열리는, 즉 ‘벽’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게 도어스윙이다.
그래서 난 하이 패스트볼을 무리하게 쫓아가기보다는 내 스윙 밸런스에 더 집중했다. 타이밍은 패스트볼과 브레이킹볼 중간 정도로 잡았다. 히팅 포인트를 내 몸통 가까이 두고, 내가 예측한 것보다 공이 빠르게 날아오면 순발력으로 대응하려 했다. 타구에 힘을 더 실으려 노력했고, 꼭 높은 공을 타격해야 할 때는 올려서 쳤다.
나는 윌리엄스와 대척점에 서 있는 로의 이론에서 타격 아이디어를 떠올린 적도 많았다.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해야 한다. 타격은 두 이론이 서로 부딪히면서 함께 고민하는, 아주 긴 토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