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다. 배우 진선규의 첫인상이다. 자기를 주장하거나 돋보이려는 몸짓보다 다정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먼저 들어왔다. 진선규를 만난 거의 모든 사람은 그가 “착하다”고 말한다. 연기를 잘한다, 완성된 배우다 등 여러 수식어가 있지만 그를 표현하는 가장 직관적인 말은 ‘착한 진선규’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선규를 만났다. 진선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체육선생님이 오합지졸 제자들을 만나 함께 성장하는 내용의 영화 ‘카운트’에서 인생 첫 단독 주연을 맡았다. ‘범죄도시’, ‘극한직업’ 등 굵직한 영화를 통해 대중의 찬사를 받았고,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으로 연기력 역시 검증된 그다. 그러나 ‘카운트’ 개봉을 앞두고 진선규는 “정말 긴장된다”며 목을 움츠렸다. 그런 표현조차 겸손의 미덕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지난 20년 넘게 연극무대가 즐비한 서울 대학로에서 탄탄하게 쌓은 연기력 때문일 것이다.
“성실함과 꾸준함이 재능이 되고 능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무명 생활이 길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했던 시간이어서 즐겁게 지냈거든요. 그게 쌓여서 제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것을 하니까 발전하게 되고, 그것이 10년이 넘어가면서 ‘진선규, 잘하지. 잘하는 배우야’ 그런 이야기가 들리더라고요.”
원래부터 배우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진선규가 ‘카운트’ 개봉에 앞서 수차례 밝힌 것처럼, 그는 원래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평범하고 조용한 학생이었던 진선규는 ‘힘 센’ 친구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합기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면서, 진선규는 계속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체육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아버지가 아마추어 복싱 선수셨어요. 절대 ‘운동 같은 거 하지 말아라’는 말을 듣고 자랐죠. 그런데 저는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지망 학교를 계속 체육대로 썼거든요. 어느 날 친구의 친구가 연극 연습한다고 놀러 오라는 거예요. 진해의 작은 극단에 갔는데 모여서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너무 따뜻해 보였어요. 형들에게 ‘연극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연극영화과에 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바로 독백 3개를 외워서, 한국예술종합학교 3기로 입학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배우의 꿈을 가졌어요.”
아버지의 반대가 있었지만, 진선규는 어미니가 친구에게 돈을 빌려 마련해 준 등록금 120만원과 가방 세 개를 들고 상경했다. 그리고 대학로 연극판에서 고창석, 오나라 등 배우들과 함께 ‘나중에 같이 영화 해 보자’며 치기 어린 꿈을 꿨다고 했다. 그리고 진선규는 ‘카운트’를 통해 그 꿈을 실현했다.
“제가 ‘카운트’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소리내서 읽기 시작했어요. 전 진해가 고향이고, 체육선생님을 꿈꿨고, 36살부터 취미로 복싱을 시작했거든요. ‘시헌’ 역할이 저하고 굉장히 흡사하기도 하지만, 이 캐릭터의 가치관과 삶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고, 가족과 동료를 통해서 힘을 얻는 그런 삶이요. 만약 제게 무슨 일이 생겨서 꿈으로 가는 길이 좌절된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는 가족과 동료가 있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천천히 일어날 것 같아요. 그렇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과 닮은 ‘시헌’을 연기하며, 진선규는 제작사에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한다. 바로 자신과 합을 맞추는 모든 단역과 연습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진선규는 “제가 단역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촬영장에서는 주연 배우와 단역 배우가 합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저도 혼자 촬영지로 가면서 단 한마디 대사를 하기 위해 연습했던 과거가 있었다. 대사 한번 하면 다시 집으로 가야 했는데 그런 걸 없애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진선규 연기력의 ‘핵심’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들어주고, 그의 연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이다. 진선규는 “저는 한 번도 먼저 ‘이렇게 할게요’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렇게도 못 하는 성격”이라며 “그냥 ‘연습을 해 봅시다’라고 말한다. 좋은 연기는 상대방을 먼저 느끼고, 그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유기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선규의 ‘사람을 향한 마음’은 현장의 따뜻함으로 이어졌다. 모든 단역과 만나 연습하고 식사하며 관계를 쌓으니 현장에서도 배우들과 합이 잘 맞았다고 한다. 진선규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상대 배우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니까 ‘이 영화는 따뜻하고 건강하구나’를 느꼈다”고 전했다.
진선규의 다음 행보는 정해지지 않았다. 무명에서 무게감이 있는 조연으로, 또 단독 주연으로 올라선 그는 “꿈의 90%를 이뤘다”고 말한다. 진선규는 “오디션 없이 캐스팅되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걸 이뤘다”며 “전 제 꿈을 이뤘다. 이제 다음 아이들에게 꿈을 꾸는 시간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휴머니스트 진선규의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