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가 과감하게 타격 폼에 손을 댔다.
15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대표팀에 소집된 이정후는 지난해와 다른 타격 폼을 보여주며 변화를 예고했다.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보폭(스탠스)을 조금 좁히고 (배트를 잡은) 팔의 높이를 낮췄다"며 "연습할 때는 괜찮은데 아직 경기를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정후는 명실상부 KBO리그 최고 타자다. 지난해 정규시즌 142경기에 출전, 타율 0.349(553타수 193안타) 23홈런 113타점을 기록했다. 역대 네 번째로 '타격왕 2연패'를 달성하며 KBO리그 타격 5관왕(타율·최다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에 데뷔 첫 최우수선수(MVP)까지 수상했다. 3000타석 소화 기준 역대 타율 1위(0.342)일 정도로 타격에 관해선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올겨울 타격 폼을 수정했다. 이정후는 "(김)하성이 형의 영향이 크다"며 "하성이 형이 어차피 미국에 오면 무조건 타격 폼을 수정해야 한다고 얘길 해주더라. 가서 실패하고 바꾸는 것보다 텀(기간)을 줄이고 싶었다. 미리 준비한 상태에서 메이저리그(MLB)에 가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작년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귀국한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이정후를 만나 타격 관련 조언을 했다. 김하성과 이정후는 히어로즈에서 한솥밥을 먹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 김하성은 2021년 1월 MLB 샌디에이고 구단과 계약했고, 이정후는 올 시즌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빅리그 문을 노크할 예정이다. 서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정후의 타격 폼 수정은 빠른 공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처방이다. 2019시즌을 앞두고 타격 폼을 바꾼 나성범(현 KIA 타이거즈)과 비슷하다. 당시 나성범은 MLB 진출을 준비하면서 준비 동작에서 배트를 쥔 두 손의 위치를 귀 높이에서 가슴 쪽으로 내렸다. 테이크 백(스윙하기 전 배트를 뒤쪽으로 약간 빼는 동작)을 줄이겠다는 목적이었다. 테이크 백이 크면 타구에 힘을 실어 보낼 수 있지만, 스윙 궤적이 커져 빠른 공 대처가 쉽지 않다.
강속구 투수가 즐비한 MLB에선 적응에 실패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정후는 "KBO리그에선 빠른 공을 어떻게 쳐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 같다. 그건 국제대회도 마찬가지"라며 "지난해에는 빠른 공을 못 치는지도 몰랐다. 한 번도 빠른 공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성이 형의 얘기가 크게 다가왔다. (MLB에) 직접 가 계신 분이 말해주니까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수치가 말해주더라. 난 한국에서 155㎞/h 이상 공을 1년에 많아야 20개 정도 볼 텐데 하성이 형은 지난해에만 270개 넘게 그런 공을 상대했더라. 엄청난 수치"라며 "한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공을 거의 매일 보고 있다는 거니까 그 부분에서 내가 느낀 게 있었다"고 전했다. MLB에는 KBO리그에서 볼 수 없는 160㎞/h 강속구 투수도 적지 않다.
갑작스러운 변화 탓에 시즌 전체 성적이 흔들릴 수 있다. 이정후는 "불안하기도 한데 안 되면 다시 돌아오면 된다"며 "지난해 했던 대로 해도 잘할 자신이 있지만 그렇게 하면 그 수치에 머무를 거 같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변화를 주는 게 힘들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돌아오면 되기 때문에 괜찮다. 적응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이 (변화를 줄) 적기일 거 같다"고 말했다.
WBC는 변화를 중간 점검할 시험대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들이 대거 대회에 출전한다. 이정후는 "진짜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