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 키노 스포츠 콤플렉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대표팀 왼손 에이스 양현종(KIA 타이거즈)이 소집 후 첫 불펜 피칭에 들어갔다. 화씨 71도(섭씨 21.7도)의 무더운 날씨였지만 계획한 투구(43구)를 모두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양현종의 피칭을 뒤에서 지켜보던 이강철 야구 대표팀 감독의 표정에선 옅은 미소가 보였다.
불펜 피칭을 마친 양현종은 "오늘 피칭할 때 (감독님께서) '많이 컸다'고 하더라.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 거 같다"며 웃었다. 양현종과 이강철 감독은 사제지간이다. 광주동성고를 졸업한 양현종은 2007년 KIA에 입단, 통산 159승을 따낸 대투수로 성장했다. 2005년 은퇴 후 KIA 2군 투수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 감독의 2007년 보직은 1군 투수 코치였다. '타이거즈 대선배'이자 '신인' 양현종의 성장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야구 관계자 중 하나다.
양현종은 "2009년도 마찬가지고 2010년 초반 (경기가 끝나도) 끝까지 남아서 (감독님과) 운동하고 그랬다. 수비나 트레이닝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항상 감독님과 지옥 훈련 아닌 지옥 훈련을 했었다. 기억이 많이 난다"고 회상했다. 양현종의 얘길 전해 들은 이강철 감독도 "대투수하고 같이 있어서 가슴이 벅차다"며 애제자를 향한 덕담을 건넸다.
스승과 제자는 WBC 대표팀에서 만났다. 이강철 감독은 2021년 KT 위즈의 프로야구 통합 우승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그 결과 WBC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양현종은 지난 6월 통산 152승을 기록 중인 이강철 감독을 뛰어넘어 KBO리그 통산 다승 단독 3위로 올라섰다. 김광현(SSG 랜더스)과 함께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왼손 에이스로 이번 WBC 대표팀의 주축 자원이다. 양현종은 "어느덧 대표팀의 베테랑으로 해야 할 역할이 많기 때문에 (감독님께서) 흐뭇해하면서 제 피칭을 바라보시지 않았나 싶다. 오랜만에 제 뒤에 감독님이 계시는 걸 보고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어릴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강철 감독은 "베테랑은 힘이 떨어져도 제구가 안정적이다. 어린 선수는 힘이 있어도 제구가 불안정하니까 그 조합을 잘 맞춰야 한다. 현종이는 나이도 있고 경력도 있고 연륜도 있어서 그런 애들(어린 선수)을 잘 끌고 가야 한다"며 "오늘 PFP(Pitcher Fielding Practice·투수 수비 훈련)에서 이의리(KIA 타이거즈)를 보니까 양현종 어렸을 때랑 거의 비슷하더라. 현종이 생각이 나서 '너 어렸을 때 본 거 같다'고 하니까 자기도 그랬다더라. (양현종은) 자부심을 갖고 잘한다. 이제 어른이 됐다"고 껄껄 웃었다.
스승과 제자는 같은 목표를 갖고 움직인다. 현역 빅리거가 총출동해 '야구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WBC에서 한국야구의 위상을 세우는 게 최우선 과제다. 선발이 익숙한 양현종이지만 대회 특성상 불펜 투입도 대비한다. 그는 "항상 감독님께서 미리 최대한 편하게 역할을 만들어 주신다. 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