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스캔들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지만 이 말을 우리는 다소 오용하거나 과장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 불륜 같은 것이 아닌 연예인의 열애설조차 ‘스캔들’이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도 잘못된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에 보이는 평판이나 소문이라는 것이 본래 그러하듯이 스캔들로 표현돼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바로 이런 억울한 평판과 소문으로서의 ‘스캔들’이 소재다.
그 스캔들은 사교육계의 BTS, ‘1조원의 남자’로 불리는 일타 수학 강사 최치열(정경호)이 전직 핸드볼 국가대표였지만 지금은 반찬가게 사장님인 남행선(전도연)의 딸(사실은 조카지만) 남해이(노윤서)의 개인 과외수업을 해줬다는 게 드러나면서 생긴다. 액면으로 보면 이게 무슨 스캔들거리가 될까 싶지만,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사교육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현실 속에서 스캔들이 돼버린다. 즉 모두가 줄을 서는 일타강사이고, 그래서 그 강의에 들어가기 위해 돈과 지위 같은 권력을 동원하기도 하는 상황 속에서 일개(?) 반찬가게 사장님의 딸을 개인 과외 해줬다는 걸 이 치맛바람 엄마들은 순수하게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치 남행선이 딸 개인 과외를 위해 최치열에게 ‘육탄 돌격’이라도 한 것처럼 몰아간다. 그것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가 불륜을 저지른 것으로.
이 스캔들에는 한국의 입시교육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사교육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사교육도 부모의 재력과 지위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만드는 현실이 그것이다. 그래서 ‘일타 스캔들’ 속에서 최치열과 남행선이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되는 로맨스의 과정들은, 이를 스캔들로 몰아세우는 사교육 현실과 대결구도를 갖는다. 게다가 이 교육 현실은 자본화된 한국 사회의 위계구도를 고착화하는 문제가 아닌가. 이들의 사랑이 스캔들이 아니라 로맨스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은 그래서 속물화된 세상과 싸우는 과정처럼 비춰진다.
흥미로운 건 최치열이 남행선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로 이 드라마가 ‘인간적인 요소들’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최치열은 먼저 남행선이 아닌 그가 해준 음식에 빠져든다. 1조원의 남자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고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에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는 섭식장애에 수면장애까지 갖고 있는 최치열은 남행선이 해준 밥을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고 수면제 없이도 잠을 잘 자게 된다. 그건 그 음식이 과거 최치열의 고시시절 엄마처럼 밥을 챙겨줬던 밥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다. 그 은인은 다름 아닌 남행선의 엄마였다. 이러한 구도는 모든 걸 숫자로(돈으로) 위계화하고 그래서 로맨스도 스캔들로 몰아세우는 저 속물화된 세상에 대해 이 드라마가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제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따뜻한 온기가 담긴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는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
“스캔들 아니에요. 왜냐면 저희 엄마는 실은… 엄마가 아니라 이모예요. 미혼이고요. 그러니까 이건 스캔들이 아니라 로맨스예요.” 자신이 버려진 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함에도 남해이가 이렇게 하는 말이 뭉클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오는 건, 그 마음에 담긴 남행선을 생각하는 마음과 더불어 속물적인 세상에 대한 분노 또한 느껴져서다.
무엇이 본질인가. 이모와 조카 사이라고 해도 모녀 사이 그 이상의 각별함이, 또 가진 것의 차이에 의해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 치부해 스캔들로 만들어버렸지만 더더욱 애틋한 사랑이 이들 관계의 본질이다. ‘일타 스캔들’은 물론 달달하고 따뜻하며 유쾌하기 그지없는 로맨틱 코미디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스캔들과 로맨스의 대결구도는 이 드라마를 평이한 멜로 그 이상으로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