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의 드라마 시상식으로 알려진 프랑스 ‘시리즈 마니아’에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이 초청됐다. 과거 유럽 시청자층에서 K드라마는 일부 마니아층이 즐기는 ‘괴짜(Geek)’의 영역이었지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타고 점차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시리즈 마니아’는 지난 2010년부터 시작된 유럽 최대의 드라마 시상식이다. 국제 부문에서 주는 상도 있지만, 그동안 수상 이력을 보면 유럽연합(EU) 국가에서 만든 드라마에 대부분 상이 돌아가는 ‘로컬’ 시상식에 가깝다. 그랬던 ‘시리즈 마니아’였지만 2019년부터 K콘텐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특별 상영작에 OCN의 ‘우월한 하루’(2022년 온라인 상영작)가 초청됐다. 2021년에는 tvN의 ‘마우스’, 2020년에는 tvN의 ‘방법’, 2019년에는 OCN의 ‘손 더 게스트’가 국제 파노라마 부문에 이름을 올려 유럽 작품들과 경합을 벌였다.
‘시리즈 마니아’측은 “전 세계가 한국의 드라마 시리즈에 주목하며 글로벌 시청자들은 K드라마의 장르를 넘나드는 스토리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전했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하일권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늘을 뒤덮은 괴생명체의 공격에 맞서 싸우기 위해 입시 전쟁이 아닌 ‘진짜 전쟁’을 시작한 고3 학생들의 이야기다. 미확인 구체의 침공으로 종말 위기에 놓인 지구에서 펜 대신 총을 든 10대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다. '미스터 기간제’ 성용일 감독과 신예 윤수 작가가 의기투합했고, ‘눈이 부시게’ 이남규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조명하는 밀리터리 SF를 탄생시켰다.
이번에 ‘방과 후 전쟁활동’이 ‘시리즈 마니아’에 초청된 분야는 경쟁이 아닌 비경쟁 부문인 ‘특별 상영작’이다. 22일 티빙 측은 일간스포츠에 “이번 특별 상영작에는 총 6개 작품이 선정됐고 한국 작품 중 유일하게 ‘방과 후 전쟁활동’이 선정됐다”며 “현지에서 ‘방과 후 전쟁활동’ 1, 2화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K콘텐츠에 대한 이런 ‘시리즈 마니아’의 관심은 유럽의 콘텐츠 소비 변화 흐름과 관련이 깊다. K콘텐츠의 역사를 새로 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유럽인들에 깊이 각인됐다. 유럽시청각연구소(EAO)가 매년 발간하는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영화시장에서 유럽과 미국 외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 점유율은 2.5%에서 2020년 4.9%로 상승했다. 이에 대해 EAO는 “이는 유럽에서 45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오스카상을 수상한 한국 영화 '기생충'에 의해 주도됐다”고 짚었다. 유럽과 미국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럽시장을 K콘텐츠가 흔든 것이다.
콘텐츠 산업 면에서도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유럽 시청자층에 K콘텐츠가 많이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점이 큰 효과를 주고 있다. EAO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OTT 콘텐츠 중 영화의 79%, TV의 67%가 ‘비유럽 국가’ 작품이 점유하고 있다. 코로나19로 OTT구독층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비유럽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더 늘어난 셈이다.
특히 K콘텐츠의 경우 넷플릭스 덕을 톡톡히 봤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도에 넷플릭스 세계 회원 60%가 1개 이상 한국 작품을 시청했다. 2020년도에는 유럽의 K콘텐츠 시청시간이 전년 대비 2.5배 늘었다는 자료도 나왔다.
실제로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K콘텐츠는 전부 넷플릭스 시리즈다. ‘오징어 게임’은 영국에서 리얼리티쇼로 리메이크될 만큼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스위트홈’, ‘지옥’, ‘지금 우리학교는’ 등도 유럽 각국에서 상위권에 랭크됐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것도 유럽에서 K콘텐츠를 자신있게 선보일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최근 만들어지고 있는 K콘텐츠도 기존 로맨스·드라마가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이 다수 보인다. 넷플릭스로 선보인 SF영화 ‘정이’가 최근 공개된 데 이어 영화 ‘왕을 찾아서’도 본격 촬영에 나섰다. 올해는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스위트홈2’ 같은 크리처물도 공개되고 디즈니+ ‘무빙’같은 초능력물도 공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