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시즌 K리그1이 막을 올렸다. 개막전인 25일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맞대결은 2만 명이 넘는 관중의 뜨거운 열기 속에 축제처럼 열렸다. 올 시즌 K리그 출발부터 분위기가 남다르다.
울산-전북의 개막전이 열린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는 2만8039명의 관중이 몰렸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기록한 K리그 최다 관중이다. 지난해 울산과 제주 유나이티드 경기의 시즌 최다관중 기록(2만 3817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킥오프 2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이 인산인해였다. 구장에 입점한 먹거리, 구단이 준비한 행사를 미리 와서 즐기는 팬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구름 관중이 모여들자 김광국 울산 단장은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일찍 경기장 밖으로 나와 상황을 주시했다. 경기 전 취재진과 우연히 마주한 김 단장은 “흥분되고 기대된다. 단장 9년 차인데, 이번이 최다 관중이다. 매 홈경기가 이랬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K리그는 월드컵 직후 진행되는 경기에서 ‘흥행 시너지’ 효과를 누리곤 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이 역대 최초로 겨울에 열리는 바람에 월드컵이 끝난지 불과 두달 여밖에 지나지 않았고, 울산-전북전에는 카타르 월드컵 최고 스타라 할 수 있는 공격수 조규성(전북)도 출격했다.
그러나 이날 울산-전북전의 열기는 단순히 카타르 월드컵 여파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지난 시즌 막판까지 치열하게 리그 우승을 다퉜던 라이벌 울산과 전북의 경기를 보기 위해 찾은 열혈 K리그 팬이 대부분이었다. 관중석의 팬들은 대표팀 스타가 아닌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이번 현대가 더비는 아마노 준(전북)의 이적으로 스토리가 더해졌다. 지난해 울산의 우승에 크게 기여한 아마노는 새 시즌을 앞두고 ‘맞수’ 전북 유니폼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홍명보 울산 감독은 아마노가 동행하기로 한 약속을 어겼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전북과 울산의 경기는 ‘아마노 더비’가 됐다.
울산 팬들은 일본어로 ‘거짓말쟁이 아마노’라고 쓴 걸개를 준비해 서운함을 드러냈다. 아마노가 공을 잡을 때마다 문수축구경기장은 야유가 가득했다. 아마노는 개의치 않았다. 경기 시작 10분 만에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정확한 패스로 송민규의 득점을 도왔다. 59분간 활약한 아마노지만, 단연 경기의 주인공이었다.
양 팀 선수단이 선보인 최고 수준의 경기력도 열기를 더하는 데 한몫했다. 전반은 전방 압박 카드를 꺼낸 전북이 웃었다. 그러나 전반 43분 엄원상의 골로 동점을 만든 울산은 후반 들어 기세를 잡았고, ‘신입생’ 루빅손의 득점을 엮어 기어이 2-1 역전승을 거뒀다.
팬들은 열띤 응원전으로 화답했다. 이날 유독 신경전이 잦았는데, 선수단이 부딪힐 때마다 분위기는 고조됐다. 특히 경기 후 울산 서포터는 전북을 향해 ‘잘 가세요’를 부르며 승리를 즐겼다. 전북은 인사 온 선수들을 위로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개막전 울산의 선발 공격수로 나선 주민규는 2019년 울산에서 뛰었다가 2020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올 시즌 다시 울산으로 복귀했다. 프로 11년 차 베테랑도 이날의 열기는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는 “심장이 뛰었다. 죽을 힘을 다해 뛰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2019년에 울산 소속으로 전북이랑 경기를 하는데, 팬 1000~2000명이 선수들이 탄 버스를 두고 응원전을 했다. 당시 버스 안에서 심장이 뛰고 죽을 힘을 다해 뛰어야 한다고 느꼈는데, 그걸 오늘도 느꼈다. 안일하게 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홍명보 울산 감독도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팬분들이 좋아할 거라고 믿는다. 그 덕에 (경기장에) 찾아와 주시는 것 같다. 좀 더 잘할 수 있고 더 많은 팬이 홈구장에 찾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선수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동점 골의 주인공인 엄원상(울산)은 격한 세레머니로 팬 함성을 유도했다. 엄원상은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 모두 (관중이) 아주 그리웠을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 많이 좋아졌고 많은 팬이 즐겨주시니 나 또한 경기장에서 활약했을 때 더 좋았다”며 “많은 팬분이 오시게 하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다. 열심히 해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