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세상이 무너진다. 세상은, 엄마가 사라져도, 집이 무너져도, 고양이가 없어져도, 무너진다. 내가 사라지면 세상도 사라진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사라진 세상에 문을 걸고 새로운 세상에 문을 여는 이야기다.
일본 열도 남단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여고생 스즈메. 등교하다 한 눈에 반할 만한 잘생긴 청년 소타를 만난다. 이상하다. 이 청년 마을 근처에 폐허가 있는지 묻는다. 스즈메는 소타에게 산 속 폐허를 알려준 뒤 이상한 마음에 뒤를 쫓는다. 그러다 신기한 문을 본다.
문을 여니 밤하늘이 아름다운, 하지만 별들이 서글픈, 어떤 풍경을 본다. 이상하게도 그 풍경은 볼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다. 풍경에 넋을 잃은 것도 잠시. 이윽고 그 문에선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그 기운이 땅에 닿으면 엄청난 지진이 일어난다.
스즈메는 소타와 함께 필사적으로 문을 닫는다. 재난을 막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수수께끼의 고양이 다이진이 소타를 의자로 바꿔 버린다. 일본 각지의 폐허에 재난을 부르는 문이 열리기 시작하자 스즈메는 의자가 된 소타와 함께 재난을 막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스즈메는 규슈에서 시코쿠, 고베, 도쿄로 문을 닫아가던 중 어릴적 떠난 고향에 닿는다. 그곳에서 지워버린 과거의 진실과 만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 일본에서 3연속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소년소녀의 사랑으로 세상을 구한다는 ‘세카이’ 장르는 일본에서도 서브컬쳐(하위문화)에 가까웠다. 그랬던 장르를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성공시키면서, 이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에서 제2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라 제1의 신카이 마코토가 됐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3부작으로 불린다. 3.11 일본 대지진에서 모티프를 얻은 이 재난 3부작은, ‘너의 이름은.’으로 ‘과거로 돌아가 재난을 막을 수 있다면’을 이야기했고, ‘날씨의 아이’로 ‘재난보다 중용한 건 사람(사랑)’이라고 말하고,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재난 이후 그래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전작들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3.11을 이야기한다. 스즈메의 여정과 스즈메가 만나는 진실, 그립지만 서글픈 풍경은, 그날과 닿아 있다. 이 여정은, 이 모험은, 그래서 즐겁지만 서글프다.
재난의 피해자인 주인공이, 또 다른 재난을 막기 위해, 그 날의 재난으로 들어가는 이야기. 그리하여 재난과 마주하고 미래로 살아가는 이야기. 실제 재난을 스펙터클화 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 이야기는 일본 관객들에게 큰 위로와 감동을 준 듯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한국에서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둔 ‘더 퍼스트 슬램덩크’보다 일본에서 300만 관객이 더 찾았다.
일본 관객이 아니더라도 ‘스즈메의 문단속’은 보편적인 감성을 움직이는 요소가 꽤 많다. 전작들처럼 화려한 볼거리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 의자가 된 소타와 고양이 다이진과의 모험은 충분히 즐길 만하다. 일본 곳곳의 풍광을 담은 영상뿐 아니라 OST는 특히 인상적이다. ‘너의 이름은.’부터 신카이 마코토 전작에 참여한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의 노래는 감정을 더욱 뒤흔든다. 몇몇 음악은 ‘카우보이 비밥’과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속 음악이 연상된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 열광할 듯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열쇠로 문을 열고 닫는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다니는 열쇠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한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결국 재난을 이겨내는 방법은 누구나 갖고 있고, 알고 있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연결이 마음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