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18회에 걸쳐 연재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마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일간스포츠 독자들이 타격의 재미, 나아가 야구의 깊이를 알아가길 기대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와 야구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지금 KBO리그 팀들은 미국, 일본, 호주 등으로 흩어져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다. 지난주에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는 대표팀 훈련도 시작됐다. 캠프 출발과 함께 선수들의 경쟁은, 아니 전쟁은 시작한다. 내가 20대 초중반 나이에 캠프에서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너 놀러 왔어? 왜 그렇게 대충 치는 거야?”
내가 혼자서 배트를 휘두를 때 선배님이나 코치님이 했던 말이다. 흔히 프리배팅이라 부르는 배팅 프랙티스(batting practice)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분들이 왜 그랬는지 나도 안다. 내가 이상한 자세로 스윙하는 거 같고, 공을 살살 때리는 거 같기 때문이다. 그분들 생각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난 나의 훈련법을 고민하고, 적용했다. 좋은 타격을 하겠다는 목표는 같았으나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시즌이 끝나고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선수들은 보통 휴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한다. 이 기간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스프링캠프에서 수행할 과제를 생각하는 거다. 이번 캠프 목표는 무엇인지, 그걸 위해 뭘 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그래야 훈련 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
선수 시절 훈련할 때 나는 빈 스윙(실제로 공을 치지 않고 방망이를 허공에 휘둘러보는 동작)을 천천히 했다. 론치 포지션에서 방망이를 살살 내리면서 오른 팔꿈치를 오른쪽 옆구리에 딱 붙였다. 그리고는 오른 팔꿈치를 앞(오른쪽 가슴)으로 밀어냈다. 동시에 하체를 움직인 뒤 배트를 휙 돌렸다. 위에서 보면 배트의 움직임이 V자에 가깝다.
이 동작이 이상해 보인 모양이다. 위에서 이 동작을 내려다보면 어떨까? 팔꿈치가 내 상체로부터 떨어져 있다가(론치 포지션) 몸에 바짝 붙었다가(히팅) 다시 앞으로 나가는(폴로스루) 과정이 V와 비슷하다. 즉, 인 앤드 아웃 스윙이다.
장난치는 거로 보였던 이 동작은 나름대로 인 앤드 아웃 스윙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이런 동작을 매일 수백 번 반복했다. 그래서 나더러 남들처럼 빈 스윙을 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인 앤드 아웃 스윙이 습관처럼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이던 2006년, 난 최악의 슬럼프를 겪었다. 2007년 초반엔 타격감이 좋았다가 갈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정말 고민했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슬럼프에 빠졌을 때는 예외 없이 인 앤드 아웃 스윙이 망가져 있다’는 것이다.
방망이를 자연스럽게 휘둘러보자. 배트 무게를 따라 두 팔이 몸통에서 멀리 떨어질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방망이가 더 움직일 공간이 정해져 있다. 배트의 회전 반경이 작아졌기 때문이다. 이게 도어(door) 스윙이다. 이렇게 스윙하면 정확성이 떨어지는 데다 힘을 싣기도 어렵다.
반대로 인 앤드 아웃 스윙은 타자가 느끼기에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현란하게 변하는 투구를 따라가기에 최적의 스윙 궤적이다. 힙턴할 때까지 팔꿈치를 상체에 붙여놓고 공의 궤적을 따라가다 밀거나 당겨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발견했으니 해법을 찾아야 했다. 결국 반복 훈련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V자 스윙이었다. 배트를 오른쪽 옆구리로 확 당겼다가 앞으로 쭉 내미는 동작을 하루에도 수백 번은 해봤다.
여기서 질문 하나. 실전에서도 V자 스윙이 가능할까? 아니다. 투수의 손을 떠나 0.4초 만에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는 패스트볼을 타격하는 배트 궤적이 그렇게 크게 바뀌기는 불가능하다. 완만하게 U자를 그려도 충분할 거다.
다만 훈련 땐 뭐든지 극단적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야 실전에서 자연스러운 인 앤드 아웃 스윙이 이뤄진다고 믿었다. 남들이 장난으로 본 그 동작을 하느라 난 땀을 뻘뻘 흘렸다.
내가 또 오해를 샀던 동작 중 하나가 있다. 배팅 프랙티스 때도 대충 친다는 거다.
아마 그렇게 보였을 거다. 캠프에서 방망이를 처음 잡으면 난 공을 툭 쳤다. 힘없이 굴러간 공은 1루 근처에 멈췄다. 그렇게 툭툭, 몇 개를 더 쳤다. 그러다 보면 1루 근처에 내가 굴린 공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그다음은 2루수 쪽이다. 그다음 유격수 쪽이다. 다른 타자들이 신 나서, 또 온힘을 다해 장타를 펑펑 치는 것과 비교하면 내가 훈련하는 장면은 장난처럼 보였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훈련에서 중요한 건 ‘강한 타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자세’를 잡는 것이다. 배팅 프랙티스에서는 시속 120~130㎞의 공이 때리기 좋게 온다. 실전에서는 140~150㎞의 강속구가 무섭게 날아온다. 훈련 때 홈런을 뻥뻥 쳤던 스윙 그대로 투수와 맞서 보라. 똑같은 타구를 날릴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 그래서 난 후배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말한다.
“훈련은 훈련처럼, 실전은 실전처럼 해라.”
힘을 빼고 설렁설렁하라는 게 아니다. 실전에서 잘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거다. 난 그래서 인 앤드 아웃 스윙을 극단적으로 반복했다.
또 배팅 프랙티스 때 나는 ‘벽(오른손 타자의 왼 어깨부터 골반까지)’을 단단히 만들기 위해 1루쪽으로, 2루쪽으로 툭툭 밀어 친 거다. ‘벽’이 세워진 뒤엔 힙턴을 이용해 당겨치기도 했다. 타구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내야에서 외야로 보내면서 내 스윙 밸런스를 점검한 거다. 훈련 때 뻥뻥 쳐서 좋은 밸런스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오해와 야유를 받으면서 내 타격을 만들어갔다. 고맙게도 내 훈련법을 존중해준 지도자들도 있었다. 2008년에는 어느 정도 폼이 완성된 것 같았다. 성적도 잘 나왔다. 프로 입단 7년만, 나이로는 스물여섯 살 때였다. 당시 난 상당히 빨리 타격을 정립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이정후 선수, 강백호 선수 등을 보면 더 어린 나이에도 전성기에 이를 수 있는 것 같다.
내 전성기는 2017년까지였다. 나이로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기술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고, 힘과 스피드가 모자라지 않은 기간이 2008년부터 2017년, 딱 10년이었던 거다. 2018년 이후 내 커리어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데 그걸 만회하겠다고 더 훈련 강도를 높였다. 그래서 힘이 부쳤다. 소속 팀 사정도 좋지 못해서, 내 체력을 안배해줄 여력이 없었다.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난 트레이닝(training, 체력 향상)보다 컨디셔닝(conditioning, 체력 유지)에 더 집중할 것이다. 그랬다면 30대 후반에 기량 하락을 늦출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유니폼을 벗은 지 2년이 됐다. 현장으로부터 한 발 떨어져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연재했다. 야구 선배로서 후배들이 1년이라도 빨리 전성기에 이르기를, 또 1년이라도 더 늦게 은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건 야구팬들에게도 더없는 선물일 것이다.
20대에는 힘과 열정이 남아돈다. 대신 기술과 지혜는 모자라다. 이론이 만들어지면, 체력이 떨어지는 법이다. 마흔 살이 넘었고, 먹방을 찍는 요즘도 난 가끔 상상한다. 지금의 이론과 기억을 가진 채 20대의 젊음을 되찾는다면, 야구를 얼마나 잘할까?
젊을 때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1년이라도 빨리 자기 루틴과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우직하게 밀고나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성기가 빨리 찾아온다.
지도자도 선수를 조금 더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감독‧코치님이 각자의 개성과 계획을 존중하지 않으면 선수는 보여주기 위한 훈련만 한다. 훈련을 위한 훈련은 실전에서 쓸모없을 가능성이 크다.
강한 팀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보고 겪은 강팀은 서로 돕고 존중하는 문화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자신의 키로 볼 수 있는 곳보다 멀리 보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면 된다.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다면 (거인은 아니지만) 내 어깨를 기꺼이 빌려줄 것이다. 후배들의 건승을 빈다.
오늘로 18회에 걸쳐 연재한 ‘타격은 어쩔티비(feat.김태균)’를 마친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일간스포츠 독자와 야구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