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오픈하면 평소 30곳이 넘는 기업에서 제안이 들어왔는데 요즘은 5곳도 못 채운다."
프리랜서 웹 개발자인 김 모 씨(38)는 최근 한 대기업 홈페이지 리뉴얼 프로젝트를 끝내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다가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작년만 해도 이력서를 공개 전환하자마자 IT 기업들의 연락이 쏟아졌는데, 지금은 초조하게 달력만 바라보고 있다.
김 씨는 "예전에는 회사 위치와 근무 시간 등을 보고 마음이 가는 곳을 고르면 그만이었다"며 "확실히 취업 시장이 얼어붙은 것을 체감한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한 몸' 대접을 받던 개발자들도 경기 한파에 무릎을 꿇었다. 비단 프리랜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 선호도 최상위 기업들도 채용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이달 중순 경력 개발자 수시 채용을 진행하다 지원자들을 일괄 탈락 처리했다. 일부는 서류 전형과 코딩테스트를 통과하고 면접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사람을 구하고 있는 기술직군은 데이터센터 운영 엔지니어와 위험 관리 담당자뿐이다. 이마저도 지난해 10월 발생한 대규모 장애의 대응을 위한 전담 인력인 것으로 추측된다.
네이버도 인재 채용 홈페이지가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클라우드 보안·포털·미디어 등 10개 분야를 모집하는 네이버클라우드를 제외하고 사람을 뽑는 계열사가 거의 없다.
네이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다수의 인재를 영입했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필요한 인력은 채용하겠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과거의 공격적인 투자 기조에서 벗어나 비용 효율화에 힘을 쏟고 있다.
영업비용 중 인건비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15.2%에서 2분기와 3분기 각각 11.7%, 17.8%로 오르내리다 4분기에 한 자릿수(8.9%)로 뚝 떨어졌다.
인건비를 포함한 연간 개발·운영비용도 2021년에는 전년보다 36% 넘게 상승했지만 2022년에는 약 18% 오르는 데 그쳤다. 선제적으로 개발 인재를 확충해오다 채용 규모를 축소하자 관련 수치가 큰 폭 하락했다.
네이버는 성장세가 주춤하자 불가피하게 임직원 성과급을 줄였고, 내부에서 불만이 확산하자 최수연 대표와 김남선 CFO(최고재무책임자)가 직접 나서서 달래기도 했다.
최수연 대표는 지난 3일 임직원 소통행사 '컴패니언 데이'에서 "2023년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직면해 네이버 역시 당분간 매우 어려운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IT업계를 대표하는 양대 포털이 인력 수급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둔화가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네이버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1조3047억원으로 전년과 비교해 1.6% 줄었다. 카카오도 5805억원으로 2%가량 하락했다. 두 회사의 영업이익률도 각각 3.6%포인트, 1.5%포인트 떨어지며 수익성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카카오의 경우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감소했던 2018년에도 직원 채용을 중단한 바 있다.
IT업계의 부는 찬바람은 채용 플랫폼에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사람인HR의 개발자 채용 플랫폼 점핏의 통계를 보면 기업이 올린 공고 수는 지난해 상반기 정점을 찍고 하반기에 감소세로 전환했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이 2022년 6월 356.5%, 7월 239.9%에서 8월 100%대로 떨어진 뒤 11월 72.9%, 12월 46.4%로 폭락했다. 올해 1월과 2월에는 각각 18.9%, 14.1%로 두 자릿수 성장세도 위태로운 모습이다.
이와 반대로 입사 지원 증가율은 작년 7월부터 지난달까지 100%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사람인HR 관계자는 "기업들이 위기 경영에 나서면서 개발 직무 채용은 정체된 데 반해 구직자들의 입사 지원 사례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전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개발 직무에 대한 인기로 중장기적으로는 개발자 채용 시장이 기업의 수요와 구직자 공급 모두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