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회 WBC 대회 본선 2라운드에서 일본을 꺾고 4강 진출을 확정지은 한국. 봉중근과 이진영이 마운드 위에 태극기를 꽂고 있다. 게티이미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서는 선수들의 의지는 결연했다. 준결승 이상의 좋은 성적으로 다시 한번 국내 ‘야구붐(boom)’을 일으키겠다고 다짐했다. 2006년 1회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등 호성적이 프로야구의 황금기를 이끈 만큼,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야구 인기를 살리겠다는 각오다.
돌이켜보면 국제대회에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대회 최종 성적보단 ‘한일전’의 결과다. 2006년 적지에서 일본을 꺾으면서 대표팀을 향한 관심을 크게 끌어 올렸고, 본선 2라운드에선 한일전 승리 이후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으면서 야구팬을 열광케 한 기억이 강렬하다.
2009년 2차 대회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매 경기 치열한 승부를 펼치며 결승까지 올랐다. 비록 패했지만 연장 승부까지 이어진 결승전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승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두 차례의 WBC에서 거둔 한일전 성적은 4승 4패, 만나기만 하면 명승부를 펼치며 울고 웃게 한 한일전 덕에 KBO리그는 2010년대 황금기를 맞았다.
한일전 스타의 등장도 야구 인기로 이어졌다.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와 레이저 송구로 도쿄돔을 침묵케 한 이진영과 이종범의 결승타, ‘30년 망언’으로 공분을 산 이치로를 맞춘 ‘배열사’ 배영수와 한일전 승리의 공식이 된 봉중근, 결승전 동점타의 주인공 이범호까지 KBO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조명을 받으며 야구 인기로 이어졌다.
2006년 제1회 WBC 대표팀. 게티이미지
13년이 지난 지금, 한일전을 둘러싼 조명은 이전만큼 밝진 않다. 대표팀의 최근 저조한 성적 탓인지,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 다르빗슈 유(37·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 메이저리그 톱스타들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인지 기대가 이전만큼 높지 않다. 본선 1라운드 통과도 일본전보단 호주 등 다른 국가를 상대로 한 전승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일전 전망은 포기에 가까울 정도의 분위기가 읽힌다. 이전만큼의 관심과 투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밀린다는 전망은 이해하지만, 2006년과 2009년에도 한국은 일본보다 전력이 약했다. 그러나 그때는 선수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투지가 느껴졌다.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질 수 없다는 필승의 의지가 강했지만, 지금은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것이 야구 대표팀을 향한 시선이고 현실일 것이다.
한일전 투지는 중요하다. 경기 내용이나 결과는 물론, 향후 선수 및 리그를 향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프리미어12 대회를 보더라도 그렇다. 2015년 일본을 준결승에서 꺾고 초대 우승을 차지한 이듬해 KBO리그는 800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2019년 준우승을 차지했을 땐 결승 진출보단 한일전에서 졌다는 인식만 강하게 남아 KBO리그를 향한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한일전 성적은 리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난 6일 오릭스와의 평가전을 앞둔 한국 대표팀의 모습. WBC 제공
다행히 이강철 감독과 선수들은 한일전을 잊지 않고 있다. 이 감독은 8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전의 무게감은 다 아실 것이다. 한일전을 생각하고 있다"라면서 "첫 경기 호주전을 이겨야 (10일) 일본전을 편하게 치를 수 있다"라며 그동안 한일전보다 호주전에 집중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일전을 직접 언급하면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가급적 언급을 피해왔던 것. 호주전에 승리하면 자연스레 한일전 투지는 올라올 전망이다.
한국의 2023 WBC 목표는 준결승 진출이다. 꼭 일본을 이기지 않더라도 준결승에 진출할 방법은 있다. 하지만 KBO리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한일전에 더 투지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 1위’ 일본을 잡으면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2006년과 2009년 일본을 꺾고 조 1위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한 것처럼, 이번 대회에서도 남다른 투지로 일본을 꺾고 호성적을 거두는 그림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