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신카이 마코도 감독이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 개봉일에 맞춰 방한했다. 신카이 감독은 한국 관객을 향해 “한국 분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로 기억해주시면 좋겠다”며 “(한국과 일본은)정치적으로는 상황에 따라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지만 문화에 있어서는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8일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점에서 열린 ‘스즈메의 문단속’ 기자간담회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 주인공 ‘스즈메’의 목소리를 연기한 일본 배우 하라 나노카가 참석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 규슈의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녀 스즈메가 재난을 불러오는 문을 찾아 여행 중인 청년 소타와 같이 문을 닫아가는 내용을 그린다. 국내에서 380만명을 동원하며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일으킨 ‘너의 이름은.’(2017)에 이어 ‘날씨의 아이’(2019) 다음으로 나온 신카이 감독의 신작이다. 일본에선 세 작품 모두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날 간담회에서 ‘스즈메의 문단속’ 중 재난을 불러오는 문은 김은숙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도깨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도깨비’에서 문을 사용하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영화 소재를) 문으로 설정했다”며 “문은 일상의 신물(神物)이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며 문을 열고 닫는 것을 반복한다. 재해는 그러한 일상을 단절시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풍경이 닮아서인 듯 하다”고 답했다. 신카이 감독은 “서울을 보면 그립다는 느낌과 동시에 도쿄의 미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며 “도시는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고, 마음의 형태가 유사해서 서울과 도쿄가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한국인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카이 감독은 “‘스즈메의 문단속’은 일본인 전체의 트라우마(3.11 동일본 대지진)를 담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너의 이름은.’이 대히트를 치고 사회에 대한, 관객에 대한 책임을 갖게 됐다”면서 ”다음 작품을 봐주실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해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애니메이션보다 (재해로 일상을) 잊고 있는 이들에게 기억을 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거운 주제를 ‘즐겁게’ 관객이 받아들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설정했다고 소개했다. 신카이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현실에 있는 비극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스즈메의 이야기만 그리면 너무 무겁고 괴로울 것이라 생각했다”며 “소타를 ‘의자’로 변하게 설정한 것은 스즈메와 함께 있기만 해도 귀엽고 따뜻함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은 의자의 움직임 자체가 코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걷기만 해도 재미 있으니까요. 소타가 의자인 또 다른 이유는 스즈메의 마음을 메타포(은유)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의자의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은 재해를 입고 마음속 무언가를 상실한 걸 상징하죠. 그런 상태에서도 의자처럼 잘 달리고 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극 중 또 다른 마스코트 캐릭터 고양이 ‘다이진’에 대해서는 “일본 신사에는 코마이누라는 두 개의 동물 석상이 있다”며 “그것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신카이 감독은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아름답다가도 무시무시하게 변하는 자연을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고양이로 설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빛의 마술사’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작화로 유명하다. 그런 작화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형태로 묘사할 수 있고, 투영될 수 있는 물을 자주 사용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 현장 애니메이터가 ‘또 물이에요?’라고 한탄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신카이 감독은 “애니메이션에서 물을 그리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성가신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그것을 표현해내면 관객들이 굉장하다, 예쁘다고 해주기 때문에 힘들지만 그려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최근 AI가 생성한 그림 등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신카이 감독은 “‘스즈메의 문단속’은 적극적으로 컴퓨터 그래픽(CG)을 사용한 작품이다. 소타가 변한 의자의 움직임은 3D CG을 2D처럼 변환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최근 제작 현장에서 애니메이터가 많이 줄어들었다. 저는 이런 변화를 AI로 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스테이블디퓨전 등 생성AI가 화제가 되고 있는데 저 역시 이런 기술을 도입해 적극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