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SK의 ‘플래시 선’ 김선형(35·1m87㎝)은 여전히 빨랐고, 더 정확해졌다. 명실상부한 '동아시아 최고 가드'가 됐다.
SK는 지난 8일 잠실에서 열린 수원 KT전에서 94-91로 승리했다. SK는 이날 승리로 잔여 일정과 상관없이 플레이오프(PO) 진출을 확정했다.
쉬운 경기는 아니었다. EASL(동아시아 슈퍼리그) 일정으로 일본 원정을 다녀온 SK 선수단은 지쳐 있었다. 지난 시즌 MVP(최우수선수) 최준용은 2월 발목 부상을 입은 후 복귀하지 못했고, 최성원도 EASL 조별리그에서 발목 부상을 입었다. SK는 1쿼터 한때 KT에 12점 차까지 리드를 허용했다.
위기마다 김선형이 날았다. 12점 차로 벌어졌을 때 득점으로 흐름을 끊은 게 김선형이었다. 김선형은 3쿼터 막판 동점을 만들었고 4쿼터 초반 득점으로 리드도 가져왔다. 1점 차가 이어지던 경기 종료 1분 21초 전 3점 슛을 꽂아 승기를 가져온 것도 그였다.
이날 김선형은 33점(3점 슛 6개)을 넣었다. 리그 최정상급의 속공과 돌파 능력을 보유한 김선형이 외곽에서도 폭발하니 KT가 당해낼 수 없었다.
김선형은 EASL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다. 안양 KGC와 맞붙은 결승전에서 양 팀 통틀어 최다득점(25점)을 기록했다. 앞서 TNT 트로팡 기가(필리핀)과 조별리그에서도 21점 9어시스트로 SK 결승행의 일등 공신이 됐다. 팬들도, 미디어도 이제 그를 향해 ‘동아시아 최고 가드’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김선형은 프로 12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오히려 기량이 절정이다. 그는 9일 기준 46경기 평균 29분 38초를 뛰면서 평균 16점(국내 3위·야투 성공률 48.8%) 6.4어시스트(국내 1위) 1.3스틸(국내 5위)을 기록 중이다. 득점과 어시스트는 커리어하이 페이스다. 올 시즌 변준형(안양 KGC), 전성현(고양 캐롯)과 함께 정규리그 MVP 유력 후보로 꼽힌다.
장기인 스피드가 여전하다. 골 밑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정확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전희철 SK 감독은 그를 두고 "아직도 어린 선수들과 스피드 대결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전희철 감독은 8일 경기 후 “선형이를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저 정도 위치에 올랐는데도 저렇게 노력해서 더 성장하고 있다"며 "어린 선수들이 배웠으면 한다. 김선형은 나중에 은퇴해서도 일상이 곧 노력일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EASL 후라) 체력적으로도 힘들 텐데 슛, 돌파, 스피드 등에서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매 경기 본인의 최선을 쏟아낸다"며 "미국의 스킬 트레이너도 ‘눈빛부터 다르다’라고 한다. 선형이는 계속 미국에서 스킬 트레이닝을 하며 결국 플로터를 배워왔다. 그 나이에 30분 이상 뛰면서 체력을 유지하는 점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선형이는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하다못해 (농구가 아닌) 축구를 해도 열정적일 것"이라고 웃었다.
김선형은 KT전 승리 후 “6라운드 첫 단추를 잘 끼워서 좋다”며 “(EASL 후라) 힘든 건 맞다. 1·2쿼터에 조금 체력 비축을 했던 것 같다. 나름대로 전반에 체력 안배를 하면서 후반을 준비했고, 후반에 부스터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승리에 대한 공은 오히려 "2쿼터에 들어갔던 선수들이 분위기 반전을 잘해줬기에 추격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벤치 멤버들에게 돌렸다.
EASL은 김선형에게 확신의 계기가 됐다. 그는 “EASL 준우승 후 라커룸에 들어가니 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 눈물이 났다. 울었더니 정말 후련했다”며 “많은 걸 느끼고 배웠던 대회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꿨다. 4년 전 터리픽 12에 나간 적이 있다. 내 기량이 그때보다 도태됐는지, 유지했는지, 성장했는지 물음표였다. 이번 대회로 내가 오히려 성장했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