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롤스로이스, 볼보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의 한국행이 줄을 잇고 있다. 주요 시장으로 부상한 한국을 직접 점검하고, 한국 기업들과 배터리 등 전동화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귀한 시장 된 한국…럭셔리카 거물들 잇단 방한
14일 업계에 따르면 애드리안 홀마크 벤틀리모터스(벤틀리) 회장 겸 CEO는 지난 8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벤틀리 큐브'의 오픈 행사에 참석했다. 한국을 처음 찾은 홀마크 CEO 곁에는 본사 임원진 5명도 함께했다.
벤틀리 큐브는 벤틀리의 새로운 '컨템포러리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콘셉트 디자인을 전 세계 최초로 적용한 플래그십 리테일 전시장이다. 차량의 실물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다양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벤틀리의 특징적인 수직적 패턴 등으로 꾸민 1층의 차량 전시공간 ‘히어로 카 존’이 나오고, 2층에는 주문할 차량의 세부사항을 직접 디자인하고 여러 재료를 이용해 차량 실내외 색상을 조합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3층에는 주문제작 브랜드인 뮬리너의 한정판 모델 바투르가 전시된 '바투르 스튜디오 스위트'가 있다. 바투르를 공개하는 것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이 처음이다.
벤틀리는 올해부터 한국 고객을 위한 ‘벤틀리 코리안 에디션’ 모델을 한정판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벤틀리 큐브에는 고객들이 서로 교류하거나, 벤틀리 오디오의 음향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홀마크 CEO 방한이나 벤틀리 큐브 개점은 한국 시장의 위상을 나타낸다. 전 세계 럭셔리카 시장에서 한국의 성장세는 실로 놀랍다.
실제 지난해 벤틀리의 한국 판매량(775대)은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에서 가장 좋았다. 특히 세단 플라잉 스퍼가 380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벤테이가’가 208대나 팔렸다.
홀마크 CEO는 "벤틀리 큐브 오픈과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돼 기쁘다"며 "한국은 글로벌 럭셔리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나라로, 서울에서의 벤틀리 큐브 오픈은 벤틀리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이달 말에는 '영국 왕실 차' 롤스로이스의 토스텐 뮐러 오트보쉬 CEO가 방한한다.
그는 딜러사 관계자와 국내 자동차 전문가, 고객까지 두루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한을 통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럭셔리카 시장을 확인하고 한국 시장 공략 강화를 위한 전략 마련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롤스로이스도 국내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20년 171대에서 202년 225대로 31.5% 급성장했고, 지난해에도 234대를 판매하며 역대 한국 시장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시장에서 3번째로 롤스로이스 판매량이 높은 곳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11월 스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회장이 방한했다. 당시 윙켈만 회장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우루스 S를 직접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성장세는 매우 크고, 람보르기니에게는 여덟 번째로 큰 시장”이라며 "(한국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우루스 S를 소개하는 자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한국 시장 진출 이후 처음으로 판매량 400대를 달성했다. 2019년 173대에서 2020년 303대로 2배 가까이 급증했고, 2021년 353대, 지난해 403대를 판매하는 등 매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많이 판매된 차량은 약 3억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우루스다.
이처럼 초고가 브랜드 CEO들이 한국을 찾는 것은 국내 시장 공략법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은 초고가 수입차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1억원 이상 고가 수입차는 총 7만1899대로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는 "럭셔리 수입차가 부를 과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며 “한국 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제조사의 CEO들도 아시아 주요 국가로 인식하기 시작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협력 위한 방한도 잇따라
글로벌 완성차 CEO들은 한국 기업들과 배터리 등 전동화 협력을 위해서도 한국을 앞다퉈 찾고 있다. 전동화 과정에서 완성차 업체들의 가장 큰 숙원은 전기차용 배터리의 원활한 수급이다. 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등 'K배터리' 3사는 이런 요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기업이다.
당장 짐 로완 볼보 최고경영자(CEO)가 비에른 앤월 최고영업책임자(CCO), 하비에르 발레라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임원들을 대거 이끌고 지난 12일 방한했다. 볼보 CEO의 방한은 7년 만이다. 특히 'C레벨'의 임원들이 무더기로 함께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완 CEO는 1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새로운 볼보의 시대'(A New Era of Volvo Cars)라는 주제로 한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한국 고객들의 높은 관심과 사랑에 화답하고자 볼보의 안전과 전동화의 상징적 모델인 EX90을 올해 말에 한국에서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로완 CEO는 미디어 콘퍼러스 전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이미 볼보 상용차 부문과는 협력하고 있다. 볼보가 지난해 벨기에 겐트에 설립한 첫 배터리팩 조립공장에 배터리 셀과 모듈을 공급 중이다.
볼보코리아 관계자는 "지난해 취임하고 나서 볼보가 진출한 나라마다 둘러보는 일정"이라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 배터리 업체와의 미팅 등 구체적인 일정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이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났다.
그는 신형 7시리즈의 한국 출시를 기념해 방한했는데, 이 차의 전기차 모델인 i7에는 삼성SDI의 배터리가 들어간다.
이 회장의 만남도 배터리 협력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삼성과 BMW는 지난 2009년 전기차 공동 개발을 발표한 이후 13년간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당시 집세 회장은 "전동화에 있어 삼성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 중 하나이며 삼성 경영진이 우리의 최신 기술력이 집약된 새로운 BMW i7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BMW와 함께 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양사 간 협력을 강화해 나가자"고 답했다.
포드의 팔리 CEO도 이보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 SK온의 경영진을 만났던 것으로 전해진다. 포드는 SK온과는 미국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는 유럽에서 파트너십을 공식화하고 합작공장 설립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 아우디는 아우디 AG 이사회 멤버이자 세일즈&마케팅 최고책임자(COO)인 힐데가르트 보트만이 16일 국내 언론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한다. 보트만 COO는 이를 통해 아우디의 전동화 지향점 등을 소개할 것으로 보인다.
볼보, BMW 등 수입차 브랜드의 고위 임원진들이 한국을 찾는 것은 배터리 협력은 물론 국내 시장의 중요도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수입 승용차 점유율(테슬라 제외)은 2019년 15.93%를 기록한 뒤 매년 성장해 2022년 사상 최고치인 19.69%를 기록했다. 협회 비회원사인 테슬라를 포함하면 수입차 비중은 20%를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럭셔리카는 물론 일반 수입차 업계 역시 우리나라는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주요 시장 중 하나”라며 “판매량뿐만 아니라 시장의 상징성, 영향력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한국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