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일 대학축구 1,2학년 챔피언십에 참여한 인천대(한국)와 쓰쿠바대(일본)의 경기가 열린 20일 일본 지바현 우라야스 스타디움. 경기는 쓰쿠바대의 5-1 완승으로 끝났는데, 취재진의 관심은 해트트릭을 터뜨린 공격수 한다이 마사토보다 승장에게 관심이 쏠렸다. 한국 축구 팬에게도 익숙한 히라야마 소타(38) 감독이 쓰쿠바대의 지휘봉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라야마는 현역 시절 일본을 대표하는 공격수였다. 신장이 1m90㎝인 그는 2003년과 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서 뛰었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일본 23세 이하(U-23)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20세 때 네덜란드 프로축구 에레디비시의 헤라클레스 알멜로를 통해 프로에 데뷔해 유럽 무대를 경험한 걸 보면 그의 잠재력과 기대감이 컸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등번호 9번을 달았던 히라야마는 박주영(38·울산 현대)과도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둘은 2004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아청소년선수권(현 U-20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맞붙어 나란히 한 골씩을 터뜨려 라이벌 의식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둘 다 승부차기에서는 실축했다. 당시 한국이 승부차기에서 일본을 3-2로 꺾었고, 결승전에서 중국을 2-0으로 이겨 우승했다.
국내 취재진과 만난 히랴야마도 ‘박주영’이라는 말을 듣자 무덤덤한 표정을 풀고 웃었다. 그는 “박주영을 기억한다”며 운을 띄운 뒤 “예전에 경기도 함께 많이 뛰었다. 같은 나이여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중앙 수비수로 뛰던 김진규도 기억에 남는 한국 축구선수”라고 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셋은 현재 모두 지도자 길을 걷고 있다.
히라야마는 유럽 진출 첫 시즌에 정규리그 31경기에 나서 8골을 넣는 등 혜성같이 떠올랐지만, 이듬해 돌연 FC도쿄(일본)로 복귀했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서는 기복 있는 성적을 내다가 지난 2018년 베갈타 센다이(일본)에서 현역 은퇴했다. 그는 “은퇴하고 지도자 생활한 지 5년이 됐다.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히라야마는 현역 은퇴한 뒤 자신의 모교인 쓰쿠바대에서 후진 양성을 시작했다. 쓰쿠바대의 총감독은 마사키 코이도이고, 히라야마는 팀의 수석 코치를 맡고 있다. 1,2학년챔피언십엔 히라야마가 지휘봉을 잡은 거다. 쓰쿠바대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FC에서 뛰는 공격형 미드필더 미토마 카오루(26)를 배출한 학교로 유명하다.
히라야마는 ‘괴물 공격수’라는 별명답게 상대를 거칠게 압박하고, 빠른 속도의 빌드업을 통해 공격의 방점을 찍는 전술을 쓰쿠바대에 입혔다. 그는 “현역일 때 많은 감독들을 만나면서 이기거나 지거나 할 때 분위기가 천국이랑 지옥을 오가는 차이를 맛보고 싶었다”며 “나는 ‘똑똑하게, 영리하게, 달리고 싸우는 축구’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프로팀 감독을 맡는 게 지도자로서 목표라는 히라야마는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 특별한 지도 방식이 있다고 한다. 그는 “과거 주변으로부터 ‘무엇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받곤 했다. (지도자로) 지금 대학 선수에겐 늘 ‘너희 문제가 아니라 감독 문제’라고 얘기한다. 압박을 주지 않고 선수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하도록 이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