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건창은 2014년 KBO리그 역사를 새롭게 썼다. 당시 넥센 히어로즈 소속으로 201안타를 기록, 전인미답의 '시즌 200안타' 금자탑을 세웠다. 2015년부터 리그 팀당 경기 수가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늘었지만, 누구도 그의 뒤를 잊지 못했다. 기록에 근접했던 선수도 2020년 외국인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당시 두산 베어스·199개)를 제외하면 손에 꼽을 정도다. 3000타석 기준 역대 타격 1위(0.342)인 '바람의 손자'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의 한 시즌 최다 안타가 193개. 200안타 기록은 한 시즌을 건강하게 소화하면서 기량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그만큼 달성이 쉽지 않다.
영광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서건창은 2015년 4월 오른 무릎 후방 십자인대 부분 파열 부상으로 고생했다. 2016년부터 2년 연속 170안타로 건재를 과시했지만 2018년 정강이 부상으로 37경기 출전에 그쳤다. 부상에 부진까지 겹쳐 이후 긴 슬럼프가 이어지고 있다. 서건창의 최근 5년 연평균 안타는 97.8개. 2021년 7월 투수 정찬헌과 맞트레이드 돼 히어로즈에서 LG로 이적한 뒤에도 반등은 없었다. 지난해 성적은 77경기 타율 0.224(219타수 49안타). 최근 4년 연속 타율(0.300→0.277→0.253→0.224)이 떨어져 정확도까지 흔들리는 모습이다. 부진이 길어지면서 2년 연속 자유계약선수(FA) 권리마저 포기했다.
'위기의 남자' 서건창이 안타까운 건 염경엽 LG 감독도 마찬가지다. 염 감독은 2014년 히어로즈 감독으로 서건창의 대기록 달성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육성선수로 어렵게 입단해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까지 차지한 그의 스토리를 누구보다 잘 안다. 2016년을 끝으로 히어로즈를 떠난 염 감독이 지난해 11월 LG 사령탑에 선임됐을 때 서건창과 극적인 재회가 눈길을 끌었던 이유다. 워낙 선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염경엽 감독은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도 서건창을 눈여겨봤다. 염 감독은 "장점을 높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조금 있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달려가다가 장점을 잃어버린 케이스 같다. 장점을 더 강하게 만들면 단점이 채워질 수 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아쉬워했다. 서건창은 부진한 기간 내내 끊임없이 타격 폼을 수정했다. 타격 반등을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공교롭게도 타격 사이클은 더 하락했다. 염경엽 감독은 “그럴수록 더 단순하고 기본으로 가야 한다. 최대한 그렇게 해주려고 한다. 뭔가를 바꾸는 것보다 자기 폼 안에 채워 넣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 서건창은 시범경기 첫 6경기에서 23타수 7안타를 기록했다.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시범경기지만 타석에서 존재감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 정규시즌 개막에 포커스를 맞춰 컨디션을 조절 중이다. 서건창이 반등하면 LG 내야는 그만큼 더 짜임새를 갖추게 된다. 감독이나 선수가 모두 바라는 시나리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