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 동안 1루를 지켰던 강백호(24·KT 위즈)가 원래 자리였던 외야수로 돌아간다. 이강철 KT 감독은 지난 20일 시범경기 수원 두산 베어스전에 앞서 "백호에게 우익수 자리를 줄까 생각 중"이라고 전했다.
의미가 가볍지 않은 예고다. 강백호는 지난 2018년 KBO리그에 데뷔했다. 강백호는 서울고 시절 다재다능한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투수로는 최고 시속 153㎞의 빠른 공을 던졌고, 포수 마스크도 썼다. 타자로는 단연 최고의 재능이었다.
KT는 강한 어깨를 살리면서 수비 부담은 줄이는 외야수로 강백호를 내보냈다. 좌익수로 뛴 그는 타율 0.290 29홈런 84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탔다.
수비력이 뛰어났던 건 아니다. 2018년 포지션 조정 WAA(평균 대비 수비 승리 기여·스탯티즈 기준) -0.937로 좌익수 85위, 2019년 -0.418로 우익수 89위를 기록했다. 2018년 당시 강백호보다 조정 WAA가 낮은 주전 좌익수는 최형우(KIA 타이거즈) 김재환(두산) 전준우(롯데 자이언츠) 등 타격이 좋고 수비가 불안한 선수들뿐이었다. 대신 첫 해 보살 7개를 기록하는 등 강력한 어깨는 여전했다.
강백호는 2020년 1루수로 변신했다. 이 감독은 안정적인 외야 수비진 구축을 원했고, 확실한 주전 타자가 없던 1루수 빈자리도 채우겠다는 계산이었다. 결과도 나름 성공적이었다. 강백호는 1루수 전향 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KBO리그 대표 타자로 거듭났다. 하위권을 맴돌던 KT는 지난해까지 3년 연속 포스트시즌(PO) 진출 및 2021시즌 한국시리즈(KS) 우승을 거뒀다.
하지만 ‘1루수 강백호’는 단점이 적어도 장점도 적은 선택이다. 이 감독의 계산대로 외야 구멍은 줄였지만, 여전히 뛰어난 1루수가 아니다. 선수 본인의 최고 장점인 어깨를 쓸 일도 거의 없다. 그는 지난 2019년 9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투수로 등판해 최고 시속 149㎞로 여전한 어깨를 보여준 바 있다.
더군다나 팀 내 최선의 1루수 카드는 강백호가 아니다. 지난해 FA(자유계약선수)를 통해 KT로 이적한 박병호는 홈런 35개를 치며 주전 1루수로 입지를 다졌다. 강백호보다 13살이나 많지만, 전문 1루수이기 때문에 강백호보다 수비 실력이 낫다. 팀에도, 강백호에게도 더 이상 1루는 최선의 자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린 강백호를 반쪽짜리 선수로 기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강철 감독은 "백호가 아직 어린 데 지명타자로 쓸 수 없다. 본인도 외야 자리를 원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감독 인터뷰 후 취재진과 만난 강백호는 "팀에 워낙 좋고 경쟁력 있는 1루수들이 있다. 그래서 원래 내가 보던 포지션으로 가고 싶었다"고 밝혔다.
외야로 나가면서 강백호의 강견도 다시 살릴 수 있게 됐다. 아울러 향후 메이저리그(MLB)에 도전할 기회가 온다면 1루수만 보는 것보다 기회도 많이 찾아올 수 있다. 강백호는 "1루수로 옮겼다고 아쉬움은 없었다. 좋은 선택이었고, 1루수를 본 후 팀이 우승했다. 나도 골든글러브를 받았다"며 "(선수 가치를 고려할 때) 외야 복귀는 지금 해도 늦지 않다. 멀티 포지션을 볼 수 있다는 게 나만의 장점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해외 진출은 아직 이른 이야기다. 그걸 고려해서 한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수비에 신경도 많이 쓰고 있고, 지금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 결정했다"고 했다.
강백호에게 2023년은 커리어의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 지난해 부상과 부진으로 연봉이 2억 6000만원(47.3% 삭감)이 됐다. 그는 절치부심하고 2023년을 맞이했다. 부적절한 세리머니 아웃으로 논란은 됐으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서 타격감(14타수 7안타·타율 0.500)이 아주 뛰어났다. 대타로 출전한 20일 경기에서도 바로 안타를 쳐 건재함을 과시했다. 수비 포지션 변화에 성공한다면 자신의 가치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강백호는 여전히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에 이어 MLB를 노리는 후보 1순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