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에서 BL물 제작이 활기를 띄고 있다. 남성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BL(Boy’S Love)은 과거 팬픽, 웹툰, 웹소설을 통해 소비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며 ‘숨어 보던’ 소수 장르였다. 부정적 인식이 강한 소재다보니 대중매체를 통한 콘텐츠로는 터부시돼 왔다. 그러나 최근 BL 소재 드라마와 영화가 다수 제작되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소위 ‘돈이 되는’ 장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원작 웹소설의 팬덤을 기반으로 한 ‘시멘틱 에러’ 등 흥행작들이 탄생하면서 상업성을 입증한 것. 무엇보다 OTT 등 플랫폼 다양화가 이 같은 변화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2월 왓챠에서 공개된 ‘시멘틱 에러’는 한국에서 BL물이 주류로 편입하는 데 일등공신을 했다. 동명 웹소설이 원작인 ‘시멘틱 에러’는 대학을 배경으로 한 풋풋한 캠퍼스물로 웹툰,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뒤 드라마로 제작됐다. 원작의 인기로 일찌감치 팬덤을 형성했던 작품이었으나 BL물 영상화가 흔치 않았던 국내 제작 환경에서 흥행을 장담하지는 못했다. 결과는 예상치 못한 ‘대박’이었다. ‘시멘틱 에러’는 지난해 왓챠에서 시청자가 가장 많이 본 콘텐츠로 꼽혔고, 같은 해 8월 극장판까지 만들어지면서 개봉 3주 만에 관객 5만 명을 돌파하는 등 유의미한 대중성을 확보했다.
‘시멘틱 에러’가 신드롬을 일으킨 지 어느덧 1년. 그 후 웹툰과 웹소설 원작의 BL 드라마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다. ‘블루밍’, ‘수업중입니다’, ‘춘정지란’, ‘신입사원’ 등이 왓챠, 웨이브, 티빙, 시즌 등 OTT를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다. 배우와 셰프의 동거 로맨스를 그린 ‘나의 별에게’는 지난 여름 티빙에서 시즌2가 공개된 뒤 팬들 사이에서 시즌3 제작 요구가 높아지고 있고, 여기에 최근 ‘소년을 위로해줘!’, ‘비의도적 연애담’이 스트리밍화됐다. 올해는 ‘트랙터는 사랑을 싣고’, ‘따라바람’, ‘본아페티’, ‘해피메리엔딩’ 등 BL드라마가 공개 예정 리스트에 올라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BL물의 영상화가 최근 몇 년간 급물살을 탄 배경에는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이 있다. 동성애에 관대하지 않은 한국 정서상, 남자들의 사랑을 담은 BL은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 시장에서 제작이 쉽지 않은 소재였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플랫폼이 급성장하면서 특정층을 겨냥한 콘텐츠들이 힘을 얻고 상대적으로 동성애에 거부감이 적은 MZ세대를 타깃팅하면서 제작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OTT는 소위 잘 팔릴 만한 한 두개를 파는 지상파와 달리 여러가지 다양한 상품을 진열해 놓는 ‘만물상’과 같다”며 “BL물처럼 시청자 취향이 반영된 콘텐츠라면 맞춤식으로 제공한다”고 OTT의 특성을 짚었다. 그러면서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동안 BL물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가 OTT가 이를 시도했고 최근 흥행작들이 나오면서 충분히 팔릴 수 있다는 시장성을 봤다”고 분석했다.
업계도 OTT의 발달로 향후 BL물 시장의 성장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멘틱 에러’를 제작한 이하은 PD는 “OTT는 지상파와 비교해 분량도 자유롭고 제작 환경도 상대적으로 유연하다”며 “지금으로서는 BL물과 같은 특정 장르를 선보이고 시장을 확장할 수 있는 적합한 통로”라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방송뿐 아니라 OTT가 활성화돼 영상을 내보낼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이전과 비교해 BL물 제작이 활발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네이버, 카카오페이지 등 주로 BL 드라마 또는 영화의 원작이 되는 웹툰과 웹소설 플랫폼들이 OTT를 통한 영상화에 관심이 많다”며 “중견·중소 플랫폼이나 제작사들도 IP 확장 차원에서 전반적으로 영상화에 긍정적인 편이기 때문에 BL 드라마와 영화 제작 규모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