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 LG의 팀 컬러는 확실하다. 상대가 작은 빈틈만 보여도 베이스를 훔친다. 22일까지 8경기에서 24개의 도루를 성공, 리그 전체 도루(71개)의 33.8%를 차지하고 있다. 2위 NC 다이노스(9개)를 월등히 앞선 팀 도루 1위. 그뿐만 아니라 도루 시도도 32회로 2위 KIA 타이거즈(11회)의 3배 가까이 된다.
부상 우려 때문에 시범경기 도루를 자제할 수 있지만, LG는 다르다. "주력이 가장 느린 포수 박동원까지 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염경엽 LG 감독은 "상대한테 (어느 상황에서도 도루를 시도할 수 있다는) 그런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다. (우리가 뛰면) 준비해야 할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LG는 지난해에도 도루가 강점이었다. 3년 만에 팀 도루 100개를 넘기며 KIA에 1개 뒤진 2위(102개)였다. 박해민(24개) 오지환(20개) 홍창기(13개)가 'LG 육상부'를 이끈 주역이었다. 세 선수가 전체 팀 도루의 55.9%를 합작했다. 그런데 올해 시범경기에선 도루 분포가 고르다.
문보경과 손호영을 비롯해 9명의 선수가 도루를 기록했다. 지난 18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선 7명의 선수가 도루 7개를 합작하기도 했다. 4회를 제외한 매 이닝, 타순을 가리지 않고 주자들이 뛰었다. 염경엽 감독은 "전체가 다 움직일 수 있다. 한 베이스를 더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스프링캠프에서 연습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선수들이 너무 잘 적응하고 있다"고 흡족해했다. LG 홍창기와 신민재가 시범경기 공동 도루 1위(5개)다.
LG의 시범경기 첫 4경기 도루 성공률은 55.6%(5/9)에 그쳤다. 보통 도루는 성공률이 75% 이하면 뛰지 않는 게 낫다고 얘기한다. 주자가 아웃되면 그만큼 득점 가능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LG는 그럴수록 더 뛰었다. 그러면서 성공률을 조금씩 높였다.
최근 4경기 도루 성공률은 무려 82.6%에 이른다. 23번 시도해 19개의 도루에 성공했다. 염경엽 감독은 "도루에 성공하면서 선수들은 '이렇게 하면 되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공 체험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선수들이 자발적이면서 공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며 "도루로 1점을 더 뽑으면 불펜에 엄청난 여유를 줄 수 있다. 7~9회 터프한 상황(접전)이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투수 운영이 바뀐다"고 효과를 전했다.
지난 19일 열린 롯데전이 대표적이다. 당시 LG는 3-2로 앞선 7회 초 무사 1루에서 신민재가 대주자로 투입, 초구부터 2루를 훔쳤다. 이어 이천웅의 내야 땅볼로 3루까지 진루한 뒤 김기연의 적시타 때 쐐기 득점을 올렸다. 안타가 아니더라도 1사 3루에선 희생 플라이로 득점하니 상대 마운드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었다.
시범경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종의 '연막'은 아닐까. 지난해만 하더라도 시범경기 팀 도루 1위 삼성이 정규시즌에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염경엽 감독은 "LG 야구에는 뛰는 야구도 있다. 그냥 치는 게 아니라 (도루 시도를 통해) 득점 루트를 늘린 거"라며 "뛰는 야구를 보여준다면 팬들이 봤을 때도 더 재밌을 거다. 주자들의 활발한 모습, 박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캠프부터 준비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