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엄홍식은 모르겠지만 배우 유아인은 대중 앞에 얼굴을 내놓고 사는 유명인이다. 그는 전파라는 ‘공공재’를 사용해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매스미디어를 통해 자신은 얼굴도 보지 못 한 전국, 전 세계 수백, 수천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이 점만 잘 마음에 새기고 있었더라도 오늘날의 이런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유아인이 27일 언론사의 포토라인에 섰다.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에서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 대마 케타민, 코카인 등 네 종류의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에 대한 약 12시간의 조사를 마친 다음이다.
처음 혐의가 불거진 이후 줄곧 직접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자제해왔던 유아인은 이날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이런 자리에 서서 실망을 드린 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유아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프로포폴 및 네 종류의 마약 투약 혐의 등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 경위와 관련한 질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아인은 “내가 느낄 수 있는 선에서 충분히 사실대로 내 입장을 공유했다”면서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아 직접 내용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사과만큼은 확실했다. 비록 ‘일탈 행위’라 에두르긴 했지만 “내 일탈 행위들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식의 자기합리화 속에서 잘못된 늪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이런 나를 보시기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이런 순간들을 그간 살아보지 못 한, 진정 더 건강한 순간들을 살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싶다”고 했다.
안타까운 건 이렇게 깔끔했던 사과도 그가 저지른 행동을 돌이킬 순 없다는 것이다. 유아인 자신이야 반성을 하고 언론 앞에서 밝힌 것처럼 ‘진정 더 건강한 순간’을 살아나가면 될 테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업계 관계자들에겐 이 말이 어떤 실질적 도움도 줄 수 없다. 수십, 수백억이 오가는 작품들과 유아인을 모델로 전면에 내세웠던 브랜드들이 모조리 폭격을 맞았다.
먼저 넷플릭스에서 공개 예정이었던 한국 바둑의 두 전설인 조훈현과 이창호의 승부를 그린 영화 ‘승부’가 오픈을 잠정 연기했고, 역시 넷플릭스 시리즈인 ‘종말의 바보’ 역시 올해 안 공개는 어렵게 됐다. 약 영화 ‘하이파이브’는 약 2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음에도 기약 없이 개봉을 미루게 됐다. 유아인이 주요 등장인물로 작품에서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아인이 모델로 활약하고 있던 10여개 브랜드 역시 서둘러 광고 등에서 유아인의 흔적을 없애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돌고 돌아 다시 그의 직업이다. 배우, 가수 등 많은 스타들이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 조심스러워한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빛나는 자리에 있는 만큼 평소 생활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이 출연하는 작품의 성격에 따라 무단횡단조차 하지 않기도 하는 게 배우들이다. 대중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인 만큼, 그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사람인 만큼, 유아인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았다고 자기 합리화를 할 게 아니라 자신 뿐 아니라 그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유아인의 마약류 투약은 아직 상세한 내역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설령 억울하다 하더라도 유아인은 자신의 선택이 미칠 파장에 대해 대중 앞에 서는 연예인으로서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던 유아인의 일탈 행동 이유가 너무나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