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같은 문화콘텐츠가 법을 만들기도 한다. 2011년 영화 ‘도가니’가 국민적 관심을 모으자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특례법 개정안인 소위 ‘도가니 법’이 시행됐다.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법안에, 사회적인 관심을 환기시키는 영화도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 산업안전보건법(개정안)인 감정노동자보호법은 욕설, 성희롱과 같은 고객의 폭언을 예방하고, 사업주의 근로자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고객응대근로자가 고객의 폭언으로 건강장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예방조치를 시행하도록 명시돼 있을 뿐이어서, 이 법이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고객응대근로자의 현실은 별반 나아지지 않은 형편이다.
4월5일 개봉하는 ‘불멸의 여자’는 언제나 미소지으며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쳐야 하는 판매 직원의 고충을 그린 영화다. ‘저 산 너머’, ‘플라이 대디’ 등을 연출했던 최종태 감독이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한 것으로 지점장 성필 역의 안내상 외에는 연극에 출연했던 배우가 그대로 등장한다. 촬영도 연극 무대를 기반으로 해 연극적 몰입도를 준다. ‘불멸의 여자’를 본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의 연극적 형식에 감탄해 ‘스테이지 시네마’(Stage Cinema)라는 새로운 장르라고 명명했다는 후문이다.
‘불멸의 여자’는 주요 공간이 연극 무대에서 진행되지만, 클로즈업과 조명, 효과음 등의 영화 기법을 활용해 독특한 영화적 매력을 뿜어낸다. 음악에서도 독특함이 돋보인다.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전 멤버 성기완 음악감독은 영화의 진행과 동시에 밴드의 즉흥 연주를 병행함으로써 현장감을 강조하고 있다.
영화는 화장품 매장 직원 희경(이음)과 승아(이정경)가 오늘도 미소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마음가짐을 하며 손님맞이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늘 나의 미소가 내일의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는 희경은 ‘미소 천사’로 불리는 우수 사원 표창까지 받았다. 희경은 화장품 반품 문의 전화를 늦게 받는다고 핀잔을 주는 고객에게도 친절하게 응대한다. 그렇지만 눈가 주름방지용 화장품을 샀는데 오히려 눈가 주름이 더 늘었다는 고객 정란(윤가현)이 급기야 매장을 찾아와 환불요구까지 하자 위기가 찾아온다.
희경과 승아는 최선을 다해 응대했지만, 처음부터 시비를 목적으로 찾아온 정란을 설득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아무리 미소로 답해도 손찌검까지 하려는 정란을 참다못한 승아는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환불해 주려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를 지켜내는 희경과 달리 부들부들 떨며 참지 못하는 승아. 희경은 승아에게 “3초만 더 생각하라”며 타이른다. 고객 항의 한 마디면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처지는 어떤 경우에도 미소를 멈출 수가 없다. 급기야 승아의 호출로 지점장 상필까지 매장에 달려와서 정란을 달래지만, 정란은 다른 곳에서 받은 상처를 이곳에서 풀고 있던 터라 쉽게 멈추지 않는다.
정란은 마트 매장 계산원이었다가 미소짓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해고된 처지였던 것. 최종태 감독은 이런 설정으로 고객응대근로자의 문제와 근로자 해고 문제를 교묘하게 겹쳐놓는다. “우린 웃지 않으면 죽어요. 하지만 웃으면 웃을수록 더 죽고 싶어져요”라고 독백하는 희경은 하지정맥류를 앓고 있음에도 하이힐을 신고 근무해야 하며, 병원 갈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한다. 희경의 모범근무 태도는 계약직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감독은 영화에 인사권을 쥐고 있는 지점장 성필의 성폭력 갑질 문제까지 겹쳐놓았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가 발생시킨 여러 가지 부조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프랑스 작가 카뮈가 ‘이방인’이나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강조했듯, 인간존재는 운명적으로 부조리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저항과 각자의 처지에서의 성실함을 통해 부조리를 극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영화를 통한 문제의식의 환기로 인해 부조리한 사회현상을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