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은 양면적이다. 떠나기 전만 해도 머릿속으로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경험들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좁은 비행기 좌석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고역을 겪으면서 그것이 현실임을 실감한다. 게다가 낯선 타국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의 난감함이나 불편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행에 대해 설레하고 심지어 불편했던 경험들조차 하나의 추억거리로 기억하는 걸까.
김태호 PD가 이제 테오(TEO)라는 회사의 대표가 돼 내놓은 ENA ‘지구마불 세계여행’을 보다 보면 여행의 양면이 너무나 잘 드러난다. 곽튜브, 빠니보틀 그리고 원지라는 스타 여행 크리에이터들이 주사위를 던져 거기 나오는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 여행 예능이 실제 여행의 고단함과 그럼에도 갖게 되는 설렘과 로망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계여행에 참여한 이들이 모두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점은 이들의 여행기를 ENA에서 통합본으로 방영하기 전 유튜브를 통해 선 공개하고 조회수와 좋아요를 많이 받은 한 명을 뽑아 ‘우주여행’이라는 어마어마한 특전을 준다는 방식을 부여했다. 따라서 이들의 여행기는 세 크리에이터들이 주사위로 정해진 나라를 각각 여행하는 유튜브 버전과, 이를 통합본으로 만들고 한 공간에서 노홍철, 주우재, 주현영,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가 함께 코멘터리를 다는 ENA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다르지 않지만 이 두 버전은 다른 느낌을 준다. 유튜브 버전이 이렇다 할 예능적 조미료가 덜 들어간 찐 여행기를 보여준다면, ENA 버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김태호 PD표 예능 조미료가 들어간 여행 예능을 보여준다.
찐 여행기와 여행 예능의 맛. ‘지구마불 세계여행’이 보여주는 이 두 버전의 맛은 앞서 이야기했던 여행에 대한 우리의 양면적인 경험을 자극한다. 즉 유튜브 버전의 찐 여행기는 때론 환상적인 경험을 하며 힐링하는 모습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들이 현지에서 겪는 생고생이 더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에 간 원지가 방 두 개를 예약했지만 스리베드 원 룸밖에 없다고 해서 제작진과 함께 불편한 하룻밤을 보내는 모습이나, 마다가스카르에서 바오밥 나무를 보겠다며 무려 50시간을 비행기, 버스를 타고 달려간 그 과정은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빠니보틀이 돈을 아끼겠다고 그 더운 싱가포르에서 몇 시간을 걸어 다니는 모습이나, 곽튜브가 라오스에서 루앙프라방을 가는데 교통편 때문에 겪는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고생 끝에 원지가 만난 바오밥 나무의 장관이나 곽튜브가 체험한 루앙프라방의 힐링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행의 돌발 변수들은 고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행한 모습들을 마치 친구들이 모여 앉아 영상으로 관전하며 수다를 떠는 형식을 갖춘 ENA 버전은 이러한 고생담 또한 재미있는 수다거리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 힘들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꺼내놓기도 하고, 지나간 경험이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보면 고생도 추억처럼 느껴진다는 걸 이들은 보여준다.
물론 ‘지구마불 세계여행’이 두 버전으로 영상을 공개하게 된 건 지금의 여행 예능에 대한 달라진 시청자들의 기호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즉 이제 유튜브를 통해 여행 크리에이터들의 여행기를 들여다본 시청자들은 그간 기성 여행 예능보다 더 실감나는 리얼리티에 빠져들게 됐다. 연예인들의 여행기가 정해진 루트를 따라 특정 미션이 살짝 부가된 여행이었다면, 여행 크리에이터들의 여행기는 별 계획 없이 떠나 마주하는 의외의 사건들(?)을 담는 찐 여행이었던 것. 고생 속에 실제 현지의 정보들과 문화들이 담겨있어 이러한 리얼리티를 본 시청자라면 연예인들의 다소 안전한(?) 여행기는 어딘가 가이드 딸린 단체관광 같은 느낌을 준다. ‘지구마불 세계여행’은 그래서 이렇게 여행 예능의 트렌드가 바뀌어가고 있는 과도기에 김태호 PD가 내놓은 일종의 실험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실험은 흥미롭게도 여행이 가진 불편함과 추억이라는 양면을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