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이식 이후 장기를 이식해준 사람의 성격, 성향 등이 일부 옮겨오는 것. 그간 많은 영화, 드라마에서 사용돼온 이 같은 설정을 영화 ‘나는 여기에 있다’도 고스란히 담았다.
‘나는 여기에 있다’는 살인자를 쫓던 형사 선두(조한선)가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아승(노수산나)을 통해 살인자와 자신이 같은 공여자의 장기를 이식받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형사 선두는 살인자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칼에 폐를 찔린 후 장기 이식을 통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과거가 있다. 이후 수사 일선에 복귀한 그는 자신이 쫓는 연쇄 살인범 규종(정진운) 역시 장기 이식을 받았으며, 공여자가 자신과 같다는 걸 알게 된다. 피가 끓는 형사와 폭주하는 살인자.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맞대결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장기이식이란 소재는 영화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장기이식 이후 갑자기 변한 규종이 만들어내는 의아함, 그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인간관계가 분명 영화에서 어떤 포인트로 기능하는 것은 맞다. 다만 그동안 작품에서 이 소재를 지나치게 많이 봐왔다는 게 문제다. 영화가 어떤 결말로 흘러갈지가 일찍부터 예상되다 보니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놓치게 되는 점이 치명적이다.
또 장기이식 이후 성격이 바뀌어 살인자가 됐다는 설정이 자칫 살인이라는 중범죄에 서사를 불어넣는 형국으로 치닫는 점도 안타깝다. 특히 규종에게 감정적 서사가 몰리는 후반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 아슬아슬한 선을 기어이 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다만 배우 정진운의 발견만큼은 의미가 있다. 정진운은 최근 상영되고 있는 영화 ‘리바운드’에서 부상으로 꿈을 접은 천재 선수 규혁 역을 맡았다. 평소 연예계에서 소문난 ‘농구광’인 그는 물만난 고기처럼 스크린에서 펄떡인다.
‘나는 여기에 있다’ 속 규종은 ‘리바운드’의 규혁과 완전히 결이 다르다. 둘 다 속내를 감춘 시니컬한 느낌은 있지만 규종은 한층 더 격렬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형사와 육탄전을 비롯해 몸을 써서 압도하는 듯한 느낌도 연출해야 했다. 제대로 된 스크린 데뷔는 2021년. 아직 영화배우로선 3년차인 정진운은 ‘나는 여기에 있다’를 통해 서글서글한 얼굴 뒤에 강렬한 에너지가 있음을 증명했다. 앞서 아이돌에서 영화배우로 성공적인 길을 걸어나간 다른 동료들처럼 정진운 역시 스크린에서 더욱 다양한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