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마주 앉은 자리에서 조한선은 이렇게 말하며 잠시 말을 삼켰다. 2004년 영화 ‘늑대의 유혹’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지 벌써 20년째. ‘나는 여기에 있다’로 영화 나들이에 나선 그는 “형사 역만 5번 넘게 해봤다”고 웃으면서도 “이번 작품에선 남달랐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여기에 있다’(감독 신근호)는 지독한 운명에 얽힌 두 남자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리고 있다. 살인 용의자 규종(정진운)과 강력팀 형사 선두가 쫓고 쫓기는 추격을 하다 이식받은 장기의 공여자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한선이 형사 선두를 맡았다.
“선두는 폐 이식을 받은 사람이잖아요. 저는 그런 수술을 받은 적은 없기 때문에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몸 상태를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형사. 본능에 충실한 그런 캐릭터로 선두를 만들어 봤어요.”
액션, 느와르 영화로 상징되는 배우인 만큼 ‘나는 여기에 있다’에서 조한선이 보여주는 연기는 매끄럽다. 조한선은 현장을 뛰어다니는 형사의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 콧수염을 기르며 비주얼에도 신경을 썼다.
“단정하지 못 한 느낌을 내고자 했어요. 분장팀에서도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피부 표현에 신경을 써줬고요. 수염을 기른 이유도 그래서예요.”
‘나는 여기에 있다’처럼 조한선은 매 작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왔다.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에 맞는 작품을 선택하면서. 그랬기에 지나온 시간에 후회는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늘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을 돌이켜보며 사니까.
특히 영화 데뷔 20여년을 맞은 해이기에 지난 시간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배우로서 시간을 이야기하며 조한선은 꿈이 가득했던 시절들, 현실적으로 해야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듯 자주 침묵을 가졌다. 액션에서 주로 소비돼 왔던 배우의 눈빛에서 깊이있는 감정이 떠올랐다.
“작품을 선택하고 연기를 해온 것에 대해 후회는 없어요. 그래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는 없죠. 만약 다른 길을 택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면 또 다른 제가 되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이요.”
물론 중요한 건 앞으로다. 지난 세월은 그 시간을 통해 과거를 돌이키고 앞으로 나아갈 자양분으로 삼을 때 더욱 빛이 나게 마련이다. 언제까지 배우로서 지낼 수 있을지, 혹은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보다 신중하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다.
“100세 인생이라고는 하는데 제가 100살까지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서요. (웃음) 이제라도 조금 더 신중하게 가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품이라는 건, 그리고 그 작품의 흥행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그런 운이 제게 올 때까지 계속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요.”